자선(慈善)
조석규(曺錫圭) 희직의 손자. 모습이 수려하고 재주가 빼어났다. 일찍 서울(한양)에 놀러가 높은 벼슬아치들의 추허(推?)하는 바가 되었다. 병계(丙癸)100)의 봄 굶주림을 당하여 곡식을 들어내어 그것으로 궁핍한 이들을 구휼(救恤)하였다
조상복(曺相福) 병애 선장의 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형을 모시는데 우애와 공경함이 두텁고 지극하게 봉양(奉養)하였다. 자식이 없는 숙부모시기를 마치 자신을 낳은 부모처럼 하였다. 흉년을 만나 집안의 재물을 기울여 그것으로 곤궁한 일족을 구호하고, 또 노은 새보(路隱新洑)를 축조하여 농사짓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이익을 보 게하여 칭송과 명성이 한 때 (사람들의)입에서 자자했다
이우정(李佑禎) 소감 백고의 뒤. 천성의 자태가 순수하고 두터웠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모심에 일찍이 (그 뜻을) 어긴 적이 없었다. 하나의 맛난 음식을 만나면 반드시 먼저 (어머니에게)드렸으며, 책을 읽고 글을 지음에는 반드시 정성으로 하였다. 더욱이 다른 사람의 급함을 구호 하고자 하는 의리가 있어 이웃들이 많이 의지함으로써 살게 되었다. 벼슬은 가선대부
이병련(李炳璉) 여강인. 문정공 규보의 뒤. 두텁고 두루 자상하였다. 넓게 배우고 두텁게 행하며 형제4명이 늙도록 같이 살며 화목하게 즐겼다. 성품이 또한 사람을 사랑하여 베풀기를 좋아하여 손님들이 문을 가득 메우고 거지들이 가득 이르렀으며, (자신의)집을 지나는 이들을 구휼하여 끝내 (집안에는)남은(곡식 등이)없어 사람들은 (그를)살아 있는 부처(活佛)라 칭하여, 거의 입으로 만든 비석(口碑)을 만들었다
황무석(黃武錫) 평해인. 재물은 가벼이 여기고 베풀기를 좋아했다. 임포의 두여제(杜余堤)가 세월이 오래되어 무너지자 무석은 홀로 수 천 금(金 )을 내어 중수(增修)하여, 무릇 두여제 아래에서 농사짓는 이들은 그의 덕을 칭송하지 않는 이가 없었고, 관청 또한 그를 장려하였다
수직(壽職)
이구(李垢) 호는 송고. 호군 진손의 아들. 나이91세에 수직(壽職)으로 첨중추
김응기(金應起) 자양의 현손. 수직으로 통정
이일신(李日新) 주부 현의 아들. 아우인 일취 일장과 더불어 우애가 두텁고 지극하였다. 은거하면서 뜻을 구함. 수직으로 지중추
조길선(曺吉先) 사인 석보의 현손. 효종조 수직으로 통정
손응창(孫應昌) 충순위 희의 아들. 수직으로 첨지중추부사
서희복(徐希福) 학유 도의 증손. 벼슬은 참봉이고 수직으로 통정
손종례(孫宗禮) 현감 담의 아들. 선조조 수직으로 동지중추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