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여지는 글을 쓸 것인가, 조작된 글을 쓸 것인가.
나는 어제 폴란드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연인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영화 <리멤버>를 보면서 영화 만들기를 글쓰기로 치환해 생각해 보았다.
왜 이런 생각을 했는가.
기실 요즘 우리 영화는 말초신경을 자극하기 위한 장치를 과하게 삽입해 만들기 때문에 거북할 때가 많다.
반면 <리멤버>는 고요히 물 흐르듯이 흐르는 영화다. 꾸밀 것도 보탤 것도 없는 편안한 영화다. 감동이란 그렇게 주어야 하는 것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는 글은 물론이거니와 창작물의 주인공은 나름의 팔자를 타고난다. 글 속에서 팔자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 팔자를 작가가 인위적으로 비틀고, 정형화하려면 대단히 불편부당한 작품이 나올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극적으로 잘 만들어진 작중 인물이라 하더라도 인위적이고, 조작적인 느낌을 준다면, 그건 말 그대로 가공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한 번 쓰고 두 번 쓸 일 없는 일용품과 같은 것이다. 영화나 글이나 모두 타자를 향한 메시지 전달을 위한 매체다.
그 메시지가 반성이든 감동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과도한 장치를 사용하는 것은 사용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11월 개봉작 중 <늑대소년> <돈 크라이 마미> <내가 살인범이다>를 보면서도 내내 든 생각이다.
<늑대소년>은 기분 좋은 영화다. 동화 같은 이야기다. 억지스럽지도 않고, 관객에게 상상의 여지를 열어 놓는 영화다. 오랜만에 좋은 영화가 나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에 반해 <돈 크라이 마미>와
<내가 살인범이다>는 여러모로 불편한 영화다. <돈...>은 일종의 선도영화고, 계몽영화다.
미성년자가 가해자인 성폭행(추행 포함) 사건이 발생했을 때 법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의 엔딩은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의 연간 통계다.
<내가...>는 그냥 영화다. 현실로 치환해 생각해 볼 여지가 없는 영화다. 있을 법한 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너무 말이 안되는 영화다.
무술감독 출신의 감독이 만들어서인지 액션이 심하게 과장됐다. 말도 안되는 상황이 위태하고 화려하게 펼쳐진다.
영화의 인트로는 거의 만화수준이다. 격투신의 반경은 좁지만, 액션은 매우 크다. 추격장면은 더 말이 안 된다.
그럼에도 극적 장치(살인범으로 간주되는(?) 이와 형사와의 대립 구도, 진짜 살인범과 형사와 유가족 간 3자 대립 구도)를 너무 잘 사용해 이 영화의 평가는 둘로 나뉘게 되는 또다른 장치를 마련한 격이 됐다.
관객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흥행에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곧 잊혀질 영화라는 점에서 2% 부족한 영화다.
그런데 내가 <돈...>이나 <내가...>를 보면서 든 생각은 ‘저걸 보고 반면교사, 교훈으로 삼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하는 거였다.
억압과 강제, 강압 같은 강한 사건은 보통 트라우마를 낳고, 모방범죄를 유발하는 악기능에 능함을 감독이나 작가는 모르는 것일까.
우리 사회는 지금 너무 자극에 함몰되어 있다. 자극을 앞세워 돈벌이를 하겠다는 사람이나, 그걸 보고 희희낙락하는 사람이 모자라긴 매한가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문제와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는데, 쓰여지는 글을 쓰는 것이 좋고도 옳다.
영화는 글의 맥락보다 그 실천이 어려울 수 있지만 <리멤버> 같은 조작적이지 않은 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보는 이가 편한 영화가 좋은 영화다. 돈 쓰고 마음이 불편해진다면 그건 상품으로서 엘롱이다.
/심보통 2012.11.29 짓고
2022.11.29 나누다
*사진은 왕십리CGV 시사회장에서 받은 잃어버린 첫사랑을 다룬 영화 <리멤버>의 보도자료와 팸플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