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慈善)
이관현(李觀鉉) 대암 희백의 뒤. 호는 기옹. 문학을 일찍 이루고 맑은 몸가짐과 아름다운 행실은 사우(士友)들이 추중하였다. 나이가 많음으로 부호군에 제수됨
양경수(楊慶秀) 참판 효지의 뒤. 철종조 수직으로 통정(대부)
김동연(金東鍊) 석단 기의 뒤. 거상(居喪)에 3년을 죽만 마셔 향리가 칭송함. 고종조 수직으로 돈녕도정
김연상(金連祥) 군수 완의 뒤. 고종조 나이91세에 수직으로 통정(대부)
이호두(李浩斗) 처야당 언기의 뒤. 호는 호은. 천성으로 효우(孝友)하고 일찍이 당시의 학문(時文)을 익혀 여러번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수직으로 동돈녕
손희석(孫希錫) 박사 서륜의 뒤. 호는 송은. 고종조 통정(대부)
진황우(陳滉遇) 여양인. 영주부사 의귀의 뒤. 수직으로 통정(대부)
김용주(金龍柱) 노항 연의 뒤. 고종조 수직으로 통정(대부)
성세유(成世裕) 진사 이량의 뒤. 어버이 섬심에 지극히 정성스러워 향리의 중망(重望)이 되었다. 수직으로 가선(대부)
유흥식(柳興埴) 문화인. 문학(文學)이 있었다. 수직으로 통정(대부)
이현필(李玄弼) 판관 상백의 뒤. 나이가 많음으로 퉁정(대부)
박진일(朴鎭一) 청풍당 영손의 뒤. 수직으로 돈녕도정
황영곤(黃永坤) 창원인. 호는 학산. 시절과 더불어 불운(屯蹇)하여 늦도록 자연 속에서 (심신을)길렀다. 수직으로 통정(대부)이며 유고(遺稿)가 있다
김상형(金相瀅) 학암 득우의 뒤. 수직으로 통훈(대부)이며 유고(遺稿)가 있고 호는 동천이다
노석기(盧碩基) 광주인. 고종조 수직으로 돈녕부도정
양화수(楊華秀) 동박의 손자. 천성으로 효우(孝友)하고 단중(端重)하여 사람들에게 칭송되었다. 나이80세로 돈녕부도정으로 제수됨
이성의(李聖儀) 동중추 진우의 아들. 고종조 수직으로 통정(대부)
최유상(崔有翔) 훈련부정 산룡의 뒤. 수직으로 동중추
양인조(楊寅祚) 참판 효지의 뒤. 고종조 수직으로 통정(대부)
채자환(蔡自還) 인천인. 송담 응린의 뒤. 효행으로 당시에 추중됨. 수직으로 통정(대부)
한흥도(韓興道) 예조참의로 추증된 국주의 손자. 수직으로 통정(대 부)
박정립(朴靖立) 밀양인. 밀직군 중미의 뒤. 수직으로 통정(대부)
김명일(金明鎰) 소곡 대해의 뒤. 수직으로 동중추
정재기(鄭在基) 오천인. 호조참판으로 추증된 복운의 아들. 수직으로 동중추
정만아(鄭萬雅) 동래인. 임당 유길의 뒤. 나이 81세에 절충장군 첨중추부사(로 제수됨)
김태우(金兌佑) 좌윤으로 추증된 연갑의 아들. 정종조에 수직으로 동중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