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는 이맘쯤 외할매 묘소 잡초를 뽑고 쑥을 뜯어와 다듬어서는 하룻밤 불린 쌀을 한 보자기에 싸 머리에 이고 시내 방앗간으로 간다. 가서 엄마처럼 쑥떡 하러 나온 다른 동네 할매들이랑 방앗간 평상에 앉아 담소를 나눈다. 울 엄마의 대화는 수다일 리가 없는 것이 항시 화자 아닌 청자이기 때문이다.
김 모락모락 피어나는 몰캉몰캉한 쑥떡이 다 만들어질 때까지 방앗간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 엄마는 성정상 직접 제조 과정을 봐야만이 안도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미리 가늠해 본 쑥과 쌀의 비율이 적절한지, 소금을 얼마나 넣는지, 감미를 얼마나 하는지 평상 대화 중 흘깃흘깃 확인하는 것이다.
엄마의 그런 쑥떡 책략에는 요즘 장사치에 대한 불신이 들어있다. 모두 경험치와 경험칙에서 나왔다. 김천 평화시장에는 방앗간이 세 곳 있는데, 도로변에 자리한 방앗간은 엄마의 불신을 키운 주범이다.
몇 년 전 그곳은 쌀과 쑥의 배합을 잘못했으면서 그 과실을 할매들에게 떠넘기며 추가비용을 발생시켰다. 엄마는 떡장수가 돈 1~2천 원 더 벌겠다고 구멍 난 부분을 할매들에게 전가하는 걸 용납하지 못했다. 엄마는 두 번 다시 그 집을 찾지 않았다.
이번에 쑥떡을 하러 가니, 도로변 그 방앗간만 절간 같더란다. 참새는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 뵈지 않더란다. 고소한 기름내가 진동하고 할매들로 인산인해인 시장통 방앗간으로 가 사연을 물었더니, 자기 장사에 바쁜 방앗간 사장은 NOMB(None Of My Business)라는 듯 무심히 “저야 모르죠” 하더란다.
엄마는 할매들이 어리숙한 듯해도 얼마나 약았는데 장사를 그렇게 하느냐고 절간 같은 방앗간을 두고 기어이 한마디 보탰다. 좀 모자라면 저들 쑥을 넣어서 해주면 될 일이지 꼭 돈을 쳐 받을 일은 없다는 게 ‘약은 할매’이기 전에 상도덕을 아는 엄마의 생각이다.
쑥떡을 할 때 쌀도 부러 하룻밤 불려 맞춰가는 것은 쑥떡 한다고 쑥만 가져가면 할매 셈법과 떡장수 셈범이 근본부터 차이가 나기 때문이란다. 방앗간 쌀을 쓸 때와 집에서 가져간 쌀을 쓸 때 비용은 1만원 상당이나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할매들이 쑥을 뜯어 다듬고 씻기 전 쑥에 들어갈 쌀을 미리 가늠해 불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마도 촌할매들은 쌈짓돈 아껴 손주들한테 사탕 하나는 더 사줄지언정 괜스레 떡장수한테 적선할 까닭은 어림 반 푼어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쑥떡에 버무려 먹는 콩고물은 수고 대비 절약이 미미한 것이어서 방앗간에서 한봉지 3천 원 하는 걸 최고로 친다. 시쳇말로 ‘가성비 갑’인 상품이 콩고물인 것이다.
지난 주말 일흔다섯 번째 생신을 맞은 엄마는 으레 쑥떡과 함께 단술을 내놓으셨다. 첫째 라온이랑 이틀 밤 자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쑥떡과 단술을 챙겨주셨다. “가서 버리지 말고 먹어봐. 얼마나 맛있다고.” 엄마는 아직도 쑥떡 맛을 모르는 누나와 형을 의식한 탓인지 노파심에 한마디 거들었다.
쑥떡과 단술을 가져와서는 아내에게 엄마의 준엄한 지령을 전달했다.
“단술은 한번 끓인 뒤 식혀서 냉장고에 넣으래. 그래야 오래 간다고. 쑥떡은 냉동실에 넣어뒀다가 하루쯤 밖에서 해동시켜 살짝 쪄서 콩고물에 버무려 먹으래. 그래야 쫄깃쫄깃하다고.”
아내는 요즘 단술 한잔과 쑥떡 5장을 일일 간식으로 마련해 준다. 쑥떡은 쪄서 콩고물에 버무린 뒤 언제든 먹을 수 있도록 투명봉지로 정갈하게 덮어둔다. 그 투명봉지가 뭐라고 아내 하는 양이 꼭 울 엄마 같아 뭉클하기까지 했다.
오후나절 서재 궁고재(窮考齋) 창가에 앉아 울울창창한 메타세쿼이아 숲을 바라보며, 높다란 창공을 올려다보며 오물오물 쑥떡을 씹으면 고향맛이 난다. 고향내가 난다. 울 엄마가 생각난다.
/심보통 2021.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