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대학생활은 아주 단조로웠습니다. 기숙사-강의실-도서관-기숙사. 이 패턴은 거의 4년 내내 변함이 없었습니다.  일찍이 바른 소리를 좀 해 선배들의 미움을 샀고 그로 인해 어울릴 만한 동기가 없었기 때문인데, 이 덕분에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학생활 중 외도라면 군 제대 후 복학해서 ‘진달래(진실로 아름다운 미래)’라는 영어강좌를 만들어 전교생을 상대로 영어를 가르친 것과 인근 영남대로 ‘제1회 대학생 기자학교’를 오간 것, 또 서울 중앙일보에서 인턴기자로 활동한 것 그리고 비록 탈락했지만 부산외대에서 ‘학부 출신 1호 영어교수’를 뽑는 공개수업에 섰던 일이 전부입니다.  군 입대 전 ‘까발리기’란 문집을 발간한 것과 1년에 두 번 발행하던 교지에서 주최한 예지문학상과 학보사에서 주최한 샛별문화상에 당선된 것은 일상 속 소일거리였기에 외도라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 글쓰기 여정이나 사회봉사로써 영어강좌를 운영한 것, 그리고 미래 밥벌이를 위한 예비기자로서 경력 쌓기 모두 대구가톨릭대 도서관에서 탄생한 아이디어였거나 계획이었습니다.  외도를 제하면 참 재미없는 대학생활을 했다 할 수 있지만, 저는 제 생활에 매우 만족했습니다.  특히 대학 3학년은 제 독서 이력에서 아주 흥미롭고도 독특한 시기로 이른바 ‘이것저것 독서’의 진수를 맛봤습니다.  ‘이것저것 독서’는 1권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이 아니라 읽다가 지루하면 다른 책을 읽고, 또 지루해지면 또 다른 책을 읽는 식입니다.  기숙사 저녁 식사시간이 돼서 도서관을 나올 땐 5권에서 7권을 대출해 나왔습니다.  어떤 것은 더 이상 진척 없이 반납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반쯤만 읽다가 반납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독서 방식은 ‘통섭력(通涉力·사안을 두로 꿰뚫는 힘)’을 향상시키는 데는 그만인 것이었습니다.  다만 1권만 읽기가 지루해서 한 것이지 어떤 작심이나 방편으로 한 것이 아니어서 그땐 잘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뭘 알아 독서를 한 게 아니라 그냥 글이라는 걸 읽어내는 식이어서 어려운 책은 글씨를 본 것에 지나지 않을 때도 적지 않았습니다.  저는 요즘 20년 전 하던 ‘이것저것 독서’로 일과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회 경험과 세상 구경을 16년을 한 뒤 하는 ‘이것저것 독서’는 통섭력과 직결된다는 걸 양껏 체험 중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뭘 좀은 알아 ‘이것저것 독서’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릅니다.  첫 번째 회사를 그만두고는 3불(불안·불만·불평)에 가득 차 지냈지만, 두 번째 회사를 그만두고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독서든 뭐든 마음이 편치 않으면 탄탄대로일 수 없습니다.  건강도 육체가 무너져 마음이 무너지기도 하지만, 그보다 큰 문제는 마음이 무너져 육체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건강하면 마음도 육체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지요.  마음만 잘 다스려도 건강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제 서재 궁고재(窮考齋)에는 2,000권이 넘는 책이 빼곡히 자리해 있습니다.  이 책들은 저와 인연이 닿아 들어앉은 것이고, 20년간 수집한 것이다 보니 어느 자리 어느 틈에 끼어있는지 눈길만 스쳐도 골라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즘 제가 하는 일이라고는 이 놈들과 낄낄대고 노닥거리는 것과 두 아들과 낄낄대고 노닥거리는 게 전부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7년 전 정규직으로 재택근무하면서 법인카드로 일을 다닌다고 하니, ‘그런 직장이 어디 있냐’고 의아해했습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직(職)을 놓았는데도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니 또 의아해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실입니다.  ‘비움으로써 채우는 미학’이란 고상한 표현을 가져다 쓰지 않더라도 마음의 평화를 얻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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