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출판하게 된 법문집은 지난 1년간 법상에서 설법한 내용 중에 몇 가지를 간추린 것입니다. 열심히 법문을 듣고, 기도를 하는 불자들을 만날 때마다 뜨거운 구도의 열정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함께 밭을 가는 농부 같은 마음으로 설법의 내용을 분류하여 편집해 보았습니다. 구도의 길에서 행복의 밭을 가는 모든 분들께 감로의 법비가 내려지고 불은(佛恩)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하오며, 법문을 엽니다.
보현사 도량에서 석해공 합장
뿌릴 줄 아는 농부
믿음으로 씨앗을 심고
계행을 비(雨)로 삼으며
지혜를 보습의 자루로 삼고
참괴의 마음을 멍에로 삼아
바른 생각으로 스스로 보호하면
그를 쟁기질 잘하는 농군이라 하네.
<아함경>
어떻게 살 것인가
중국의 시승(詩僧) 한산(寒山) 시에
“사시무지견(四時無止見) 연거우년래(年去又年來) 만물유대사(萬物有代謝) 구천무후추(九天無朽推) 동명우서암(東明又西暗) 화락부화개(花落復花開)”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시의 뜻은
“봄이 오는 듯 곧 여름이요, 여름인 듯 곧 가을이요, 가을인 듯 곧 겨울이어서 그렇게 네 계절이 오고가고 하는 동안에 세월이 흐른다. 그래서 한해한해 오고가고 하는 동안에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들은 새 것이 오고 묵은 것이 가는 신진대사가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그 오고가는 세월과 삼라만상의 근원적 존재인 하늘만은 만고에 변하지 않는다. 동녘이 밝은가 하면 서쪽에 해가 져서 어둡고, 봄이 와서 꽃이 피는가 하면 어느덧 가을이 되어 잎이 떨어져서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모두 상대적이며 잠시도 쉬지 않는 것이 마치 주마등과 같다” 라는 것입니다.
세월,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게 하는 시입니다. 세월은 멈추지 않으며, 인생은 우리가 기다리는 대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흐르지 않습니다. 어느새 왔다가 가고, 잡았는가 하면 어느새 없어지고 마는 것이 세월이요, 인생입니다.
무엇인가 잡힐 듯 잡힐 듯해서 쫓아가다보면 구름이요, 구름 잡는 세월 다 보내고 다시 몸과 마음을 추스르려고 보면 이미 내 몸은 백발에 노쇠함만 있을 따름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인생 가는 것, 세월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오늘이니 내일이니 하는 것을 따져가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
시간에 떠밀려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간에 굴복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아주 시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시간은 금’이라 하였으며, 귀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세월만을 원망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시간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만 할 뿐 되돌아오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순간도 다 금덩이처럼 귀중하기만 한 것입니다.
만약 다시 되돌릴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머물게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금’이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은 조금도 어느 공간에 머물거나 어느 순간에 멈추거나 하지 않으므로 사실 더 엄밀히 말하자면 ‘금’ 보다 더 귀하고 귀한 것입니다. 이러한 귀한 시간을 그냥 보낼 수만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거역하면서 무시하면서 살 수도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소홀함 없이 사용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체는 제행무상(無常)이니 이를 깨달아 지혜롭게 살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신라의 원효대사는 인생이라고 하는 그 자체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과 배로 변하는 것이 있는 양면성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변하는 것이 사는 것이 중생이요. 변하지 않는 방면으로 살아가는 것이 깨달은 사람 즉 부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지금 이 순간이 과거가 되고 마는 세월 속에서 수많은 과거를 갖고 있지만 항상 현재에 있는 순간마다 미래를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래가 확실하게 와 닿지는 않지만 누구나 과거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았으면 하는 희망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은 그 끝과 시작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태어난 순간이 내 시간, 내 인생의 시작이요. 내 숨이 멎는 순간이 내 시간의 마지막이자 인생의 끝인 것입니다. 그 사이에 기쁨과 슬픔의 시작과 끝을 반복하면서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