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20대 때 인생 선배들은 이런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려줬다.
“내가 살아보니 40대도 철이 없었어. 애들이 중학생쯤 되고 50대쯤 되니 그제야 내가 철 좀 들었다 이렇게 느껴져.”
쉰 이전 삶은 철딱서니 없게 살았고, 쉰 이후 삶은 좀은 인간답게 살기 시작했다는 자기고백이 아닐 수 없다.
쉰을 향해 날아가듯 달려가는 나는 요즘, 실로 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할 수만 있다면 꼭 부여잡고 좀은 늦추고 싶다.
라온이 바론이 두 아이 커가는 모습이며, 얼마 안 있으면 복직하게 될 아내를 생각하면 그렇다.
두 아들 하는 양이 얼마나 예쁜지, 또 아내가 있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또 잘 느끼고 있다.
엊그제 옛 직장 원로들을 만날 때, 약속장소인 ‘대구 엄마’ 가게에 부러 2시간 일찍 갔더랬다. 가서 오랜만에 엄마 아빠 근황을 듣고 아들딸 며느리 사위 이야기도 듣고, 우리 가족 근황을 나눴다.
엄마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엄마 아빠는 일요일에는 가게 문을 닫고 무조건 야외로 나간다. 얼마 전에는 000(놀이 시설)을 갔는데 거기 스테이크 값이 1인분에 15만원인 거라. 너그 아빠는 비싸다고 안 먹겠다고 돌아서는데, 내가 이럴 때 안 먹으면 언제 먹어보겠냐고 당신은 가라, 나는 이거 먹겠다고 해서 결국 같이 갔는데, 막상 나올 때는 너그 아빠가 본전 이상 했다고 무지 좋아하더라, 야. 아들딸들 다 출가했제, 꼴랑 영감 할마이 둘이 남았는데, 둘 중에 누구라도 먼저 가면 우짜겠노. 나는 누구랑 놀겠나. 신랑 먼저 보낸 초등 친구도 있지만, 매번 놀 수 있나. 아빠랑 놀아야지. 나이 들어봐라 놀 사람이 신랑밖에 없다. 그카이 좋은 거 묵고 건강해야지.”
나는 엄마 이야기를 들으면서 라온이 바론이와 씨름하고 있을 아내가 떠올랐다.
지금은 아이들 하는 양이 귀여워 입술이 터져가면서도 금이야 옥이야 키우는 재미로 살겠지만, 20년 뒤면 이 집에 남는 건 아내와 나 둘 뿐이겠구나 생각하니 내년에는 바론이도 어린이집 보내고 복직 전에 자유시간을 양껏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여행도, 좋아하는 맛집기행도 잘 구상해서 복직할 때 ‘원 없이 즐겼으니 이제 회사로 가자’는 달뜬 마음은 들도록 해줘야겠다 싶었다.
초유의 코로나19 국면에서 내가 가장 우려했던 바는 모친은 둘째치고 아내와 나 둘 중 하나가 무너지는 것이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매스컴으로 3차원적으로 봐 그렇지 당장 그 일이 내 일이 된다면, 그건 그야말로 재앙인 것이다.
코로나 절정기에, 8월 한더위 속에 마스크를 낀 채 5시간 산통 끝에 바론이를 순산하며 다둥이 엄마로 국가 출산율에 크게 이바지한 아내는 ‘국가 장학생’이다.
하나 국가는 아내에게 해 준 게 아무것도 없다. 대통령 화환이라도 하나 보냈어야 했지 싶은데 말이다. 아, 출생신고를 하러 갔더니 주민센터에서 미역을 줬고, 출산축하금을 조금 줬고, 양육수당을 매달 조금씩 주고 있다.
‘국가 장학생’ 대우치곤 매우 박하다 할 뿐이다.
‘국가 장학생’ 아내 없는 우리집은 상상할 수 없다. 나는, 아빠는 명목상만 존재해도 아이들에게는 최고다.
아내는 요즘 좀 섭섭한 듯하다. 죽을 고생은 자기가 하는데, 아이들은 ‘아빠 아빠 아빠’만 찾는다. 엄마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고 볼멘소리다.
현재로선 아빠 인기가 최고다. 아빠는 가만있을 뿐인데 그렇다. 기분이야 나쁠 리 없지만 그저 주워 먹은 것 같아 겸연쩍긴 하다.
‘얘들은 왜 자꾸 아빠만 찾는데.’
새해에는 ‘행복과 삶’에 관한 책 5권을 독하게 파볼 심산이다. 세월에 밀려 지금 행복이 아스라이 물러나면 신기루 같은 공허함이 밀려들지도 모른다.
‘찐 삶’을 궁고해야 한다. 빳빳한 생각기둥을 세우듯 세월에 흔들리지 않을 행복기둥을 우뚝 세워야겠다.
/심보통 202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