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출판하게 된 법문집은 지난 1년간 법상에서 설법한 내용 중에 몇 가지를 간추린 것입니다. 열심히 법문을 듣고, 기도를 하는 불자들을 만날 때마다 뜨거운 구도의 열정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함께 밭을 가는 농부 같은 마음으로 설법의 내용을 분류하여 편집해 보았습니다. 구도의 길에서 행복의 밭을 가는 모든 분들께 감로의 법비가 내려지고 불은(佛恩)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하오며, 법문을 엽니다.
보현사 도량에서 석해공 합장
(지난호에 이어)
그러나 돈을 투자하는 광고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사는 모습이 눈 위의 발자국처럼 그래도 후손에게 남겨지고 후손들이 가야 할 길이 된다는 것을 그 광고를 통해 깨달았으면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죽는 날까지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점검하고 또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어떠한 발자국을 남기고 계십니까? 사람에게 있어 발자국이란 어떠한 업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모습에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살아가는 모습이 곧 업입니다. 선업이냐 악업이냐에 따라 다음 생이 결정되고, 자신의 생에만 영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후손에게도 영향이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자신이 잘나서 성공한 줄 알고, 일이 잘못되면 조상 탓을 한다는데, 업연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핏줄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즉 어떠한 인연에 의해 어떠한 핏줄을 타고 나느냐가 인생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업이라고 하는 것, 우리 행위의 힘이라고 하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닙니다. 업의 힘은 과거·현재·미래에 걸쳐서 존속하고 작용하는 것이지만 인간에게 도덕적인 행위를 권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업이 윤회사상과 결부되어 전개되었는데『백도범서(百道梵書)』라는 책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선을 행하면 선생(善生)을 받고 악을 행하면 악생(惡生)을 받는다. 정행(淨行)에 의해 정토에 태어나고 부정한 행에 의해 오염된 곳에 난다. 선인은 천국에 이르러 묘락(妙樂)을 얻으며 악인은 나락에 이르러 여러 고환(苦患)을 받는다. 사후의 영혼은 저울에 달아져 선악의 업을 심판받고 그것에 응하여 상벌을 받는다.”
살아 있을 때나 죽었을 때나 어떤 생을 받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남기고 있는 발자국, 즉 선업이나 악업이냐에 따라 좋은보답과 나쁜 결과가 나타납니다. 이처럼 업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중요시되어 왔습니다. 부처님이 32상의 모습을 갖추고 발바닥에 전폭륜상이 새겨지게 된 것은 바로 수많은 생에 걸쳐 쌓아온 선업의 결과입니다.
인도의 마갈타 국빙사 왕이 부처님 발바닥에 천폭륜상(千輻輪相)이 있는 것을 보고 여쭈었습니다.
“세존께서는 전세에 어떤 복덕의 씨앗을 심으셨기에 널리 삼천대천세계를 비추시는 발바닥의 천폭륜상이 있습니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옛날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먼 옛날 인도에 이익중생(生)이라는 왕이 있었다. 그 나라는 매우 부유하고 백성도 부지런하여 8만4천의 도성과 55억의 마을이 있었는 데, 왕이 있는 도성은 혜광(光)이라는 곳이었고, 백성과 재물이 풍족하여 대단히 아름다운 성이었다. 그런데 그 왕의 근심은 아름다운 왕비와의 사이에 왕자가 없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많은 신들에게 기도를 하였는데 다행히 왕비의 몸에서 왕자를 얻을 수 있었다.
왕자가 태어난 날 우연히 땅 속에 묻혀있던 보물들이 발견되었고, 이로 인해 창고에는 갖가지 보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왕자는 네 명의 유모에게서 소중하게 길러졌는데, 불행하게도 왕자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않아서 이익중생 왕이 그만 죽고 말았다. 왕비는 태자인 혜등을 열심히 가르쳤고, 15세가 되자 대신들과 상의하여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왕자가 왕위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저는 전세에 6년 동안 왕 노릇을 했었기 때문에 6만 세 동안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왕이 되는 것을 사양합니다.”
왕비와 대신들은 그런 왕자에게 왕위를 이어달라고 애걸을 하였다.
그러자 왕자는 한 가지 조건을 내걸고 그 조건을 들어준다면 왕위에 오르겠다고 했다. 조건은 바로 ‘나라 안 모든 사람들이 열 가지 착한 일을 하고 열 가지 악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신들은 이것을 온 나라에 포고하고 백성들은 이것을 지킬 것을 맹서하였다. 이에 혜등 왕자는 마침내 왕관을 쓰고 왕위에 올랐다. (계속)
왕위에 오른 혜등은 곧바로 그가 태어났을 때 발견된 여러 가지 복장숨겨진 보물들을 사문이나 바라문, 가난한 노인들에게 골고루 나눠주었다. 이를 본 제석천은 왕의 마음을 시험해 보고자 몇 사람의 남자로 변신하여 나타나 “혜등 왕은 우리들에게 열 가지 악을 행하도록 가르쳤다.”하는 소문을 냈다.
대신들은 이 소문을 듣고 왕에게 말했다. 왕은 “나는 열 가지 악을 행하라고 가르친 게 아니다. 열 가지 선을 행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는가? 만일 아직도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코끼리를 타고 온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열 가지 선을 행하고 열 가지 악을 행하지 않도록 교화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스스로 코끼리를 타고 왕궁을 나섰다.
얼마 후에 길에서 왕과 대신은 제석천이 변신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저 남자가 열 가지 악을 행하라고 왕이 가르쳤다는 사람입니다.”
대신이 알려주자 왕은 그에게 다가갔다.
“혜등 왕이 당신에게 열 가지 악을 행하라고 가르쳤느냐?”
그러자 그는 서슴없이 “가르쳤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왕은 다시 물었다.
“그럼 당신은 열 가지 선을 행할 수는 없는가?”
“못할 것은 없습니다. 다만 보살의 피와 생고기를 먹으면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왕은 그 자리에서 칼을 꺼내더니 자신의 허벅지 살점을 떼어 접시에 담아 그에게 주면서 이렇게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