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남창 정제(鄭梯)의 백학서원 풍영루 중수 기문(1761년 소작) 지금의 임금님 재위 중이신 신사년(1761)에 김휴와 이매 권달경이 고을 어른들의 뜻으로 이에 중수를 도모하니 선비들은 즐거워하고 백성들은 모여든다. 우뚝하니 재차 새롭게 하기를 서까래가 짧은 것은 부연을 달아 길게 하고, 기둥이 아래로 쳐진 것은 돌을 깎아 이었더니 장엄하고 웅장하며 높고 크면서 빛이 난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불현듯 생소한 듯도 하지만 그 서원의 집들이 이로 인하여 또한 깊고 엄격해질 것이므로 여러분들의 고생과 마음 씀에 그 공이 어찌 크다 하지 않겠는가? 비록 그렇다 해도 서원이 반드시 앞선 시대의 현인께서 향기를 뿌리신 땅으로 나아가 사당을 세워 높여 받들고 재사(齋舍)를 만들어 선비를 기름은 대개 남기신 가르침을 사모하여 보고 느끼고자 함이라 앞사람의 자취를 밟아 본보기로 하여 후학(후배)들로 하여금 떨쳐 일어나게 하는바가 있다면 우리의 도가 추락하거나 잃어버리지 않을 진대, 하물며 풍과 영자의 두 글자는 대개 증점이 ‘기수에서 목욕을 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쇠고’자 하신 남긴 뜻에서 취함에리오? 풍영루의 편액을 반드시 이것으로 한 까닭은 그 뜻함이 더욱 깊은 것이다. 대저 증점은 성인(공자)의 문하에서 공부하면서 큰 뜻을 보았기에. 그러므로 바야흐로 기수에서 목용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쇨 적에 세속의 때(더러움)를 모두 없애버리고 하늘의 이치만 유행하여 초연히 요임금과 순임금의 기상이 있었으니, 풍과 영 두 글자를 어찌 가히 사모하고 본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제 이 다락(풍영루)은 산이 감싸 안고 물을 껴안아 땅은 그윽하고 지역이 고요하니, 만일 따스한 봄날에 헌함(난간)에 기대어 바람을 맞으며 가슴 속 생각을 읊조리고 생각을 내 놓음은 진실로 가히 사람마다 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증자가 시를 읊으며 집으로 돌아오던 뜻에 이르러면 진실로 속세의 더러움을 깨끗하니 벗어버린 사람이 아니라면 가히 얻을 수 없으리니, 반드시 그 모습을 천고의 위(아득한 옛날)를 상상하여 묵연히 한 마음의 가운데서 만남을 기다려 사람으로 하여금 터럭만큼이라도 마음속에 머물거나 붙여두지 않게 함은 비단 한 때의 적합함만을 취함은 아닌 것이리니, 여러 군자들은 어찌 아니 또한 (풍영루라는)이름을 돌아보고 의로움을 생각치 않으리오? 이것으로 기문으로 삼노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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