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책은 쇼펜하우어의 ‘삶과 죽음의 번뇌(1987, 삼진기획)’이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의 대표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2권과 ‘파레르가 운트 파랄리포메나’에서 임의로 골라 번역한 것이다.
여느 철학서처럼 삶의 괴로움 허무 생존의지 사랑 죽음 교육 사색을 폭넓게 다루면서도, 여느 철학서와는 달리 풍자 비유 비판 독설로 중무장해 지루할 겨를 없이 잘 읽힌다.
이 책의 결론은 “인생이란 고통이며 마침내 허무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번역자는 풀어놓았다.
이어 “그러나 조금 더 세심하게 읽어나가면, 부정 그 뿌리가 삶에의 깊은 긍정에 닿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고 맺었다. 방점은 뒤에 찍힌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우리 생애를 이렇게 묘사해 놓았다.
“인간의 생애는 순전히 비극적 성실을 띠고 있으며, 인생은 이루지 못할 희망과 부질없는 계획 그리고 때늦게야 깨닫게 되는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생존은 죄악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에게 죽음이라는 부채를 지고 있다. 애초부터 인간으로 선택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잘못이다.”
‘인간의 생존은 죄악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에게 죽음이라는 부채를 지고 있다’는 언설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이 책을 읽을 때는 막 우울증이란 어두운 터널을 지나올 즈음이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생의 의지를 되찾았을 때 이 책의 이 구절은 전광석화처럼 내 가슴팍으로 달려들었다.
쇼펜하우어는 계속해서 시크한 표정으로 세련되게 들려준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생애를 되돌아보고 비로소 미궁에 빠져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거기에서 자신의 의지를 부정하기도 하고 다른 개체의 의지에 전적으로 의탁하는 길을 택하기도 하는데,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바로 구원이다. 결국 존재 가치는 없는 것이 더 나은 일종의 과실이며, 인식만이 우리들을 거기에서 벗어나게 한다.”
역자가 “부정 그 뿌리가 삶에의 깊은 긍정에 닿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 대목은 바로 구원이란 인식을 통해서다.
‘뭔가 대단한 걸 하면서, 이루면서 살겠다는 인생은 결국 후회를 남길지어다. 그냥 살아라. 주어진 생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아라.’ 나는 이렇게 이해했었다.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였고 인생을 최악의 세계라는 관점을 견지했다.
그곳으로부터 해탈은 두 가지뿐이다.
예술적 정관(靜觀)과 불교적 열반.
그가 생전에 삶과 죽음을 초월한 인간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런 삶을 지향한 건 틀림없다.
불교의 공(空) 관념에서 궁극의 안심입명(安心立命)을 구하려 했다.
그는 생전 인기나 유명을 초월한 인간이었다. 실제 그는 무명 작가·철학자로 살다가 갔다. 그는 그저 주어진 ‘최악의 삶’을 이렇게 저렇게 지내다 갔다. 근 200년 전 그의 문장은 오늘 새벽에 지은 것처럼 신선한데도 말이다.
쇼펜하우어는 우리에게 삶은 고독해야 좋고 초인적 삶을 지향해야 좋다는 걸 몸소 알려주고 갔다. 그의 책을, 생각을 들여다보는 건 그래서 가치가 퍽 있는 일이다.
/심보통 2021.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