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7(고종14) 조선후기 문신. 본관 昌寧 자 景休 호 龜厓. 부 暻燮 모 달성서씨 德淳의 따님. 柳致明 문인. 1831년에 식년문과 급제. 승문원 부정자. 1840 예조좌랑 종부시주부 사헌부감찰 1845 성균관 전적 1849 사간원 정언 문신 선전관 겸직 철종시 언관으로 사임. 고향에 은거 1867 조정에서 위정척사 강조하자 사서삼경 강석을 열어 유풍을 진작 1875년 공조참의 제수  古縣之白鶴山卽錦溪黃公藏修之地也壁立千仞下有長川滾滾至山之下而演漾泓渟深可行舟金沙白礫淸瑩紺寒卽所謂羊江也且鶴山之名偶合於前賢講道之地故黃公之守玆土也遂乃誅茅拓地構數間屋子而往復師門退溪李先生手書白鶴書堂四大字又詩以勉之自此師敎益勵士心興起門成鄒魯化洽菁莪矣龍蛇之難入於煨燼萬曆年間一鄕士林慨然興歎有兩先生俎豆之論而舊址則山高路險不可爲永久之計移卜於今撤享之地到今遺蹟永士無依歸環一境有識之士尤不禁高山景仰之思暮春之月約同志若爾人浴羊江登鶴山終日嘯詠如干詩篇皆不忘前人之意也迺蒙賢宰寄以序文幷惠四韻豈直爲當日遊士之興於前人尤有光焉玆呈拙構敢冀斤敎山自峨峨水自明百年陳蹟去無聲風光不減當時趣羹慕深此日觥消息金丹桂老繽紛玉珮馥芬淸玆遊豈是偸閒者俛仰中間不勝情   고현의 백학산은 금계 황공이 후학들을 지도하고 가르치던 곳이다. 절벽이 천 길이나 높이 서 있고 아래에는 긴 개울이 세차게 흘러가면서 백학산 아래에 이르러 물결이 출렁이며 깊고 넓게 괴어있어 깊이가 가히 배가 다닐 만하며, 금빛 모래와 흰 자갈이 맑고도 차가우니 곧 이른바 양강이다.  또한 백학산의 이름은 우연히 옛 현인이 도의를 강학한 곳과도 합치된다. 그러므로 황공께서 이 땅을 지킴에 드디어 띄 풀을 걷어내고 땅을 넓혀 몇 칸의 집을 짓고 사문을 왕복함에 퇴계 이선생께서 손수 백학서당이라는 넉자의 글을 써 주시고, 또한 시로써 권면하시니, 이로부터 스승은 가르침을 더욱 힘쓰고 선비들은 마음을 일으켜 (백학서원의)문은 추로(鄒魯)를 이루었고 교화는 청아(菁莪)에 협흡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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