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공 민영환 선생이 을사늑약에 항거하여 자결한 후 그의 피가 묻은 옷을 보관하고 있던 마루에서 그의 충절을 기리는 듯한 혈죽(血竹)이 돋아났다. 정용기 선생은 「혈죽가」를 지어 세상에 퍼트렸다. 『산남의진유사(山南義陣遺史)』 229P에 기록된 「혈죽가」를 지지난 해에 소개한 바 있거니와 동엄 선생이 민영환 선생을 기리는 시를 지으니 다시 단오 선생의 「혈죽가」를 읽어본다. 세상의 모든 현상이 무상(無常)하여 애착할 것이 없다. 다만 혼이 실린 글은 거듭 읽어 그 교훈을 새길만하다 하겠다. <혈죽이여, 혈죽이여. 피가 루루(縷縷)한데 삼각산 돌로써 낮밤으로 갈고 한강물로써 낮밤으로 씻고 티끌이 날로 더럽히고 풍우가 날로 뿌리어서 아침마다 저녁마다 이 흔적을 없애려 하여도 이 한 줄기의 피는 만고에 더욱 선명하리라. 나는 원하기로 이 대[竹]가 오늘 한 자 길고 내일 한 자 길어 길이가 몇 천 자 되면 간들간들한 긴 장대로 해서 세간에 간신들 머리를 걸어서 청천백일 넓은 거리에 춤을 추어서 우리 일반 국민들과 더불어 이 혈죽 노래를 부르도록 하고자 한다. 나는 원하기로 오늘 한 가지 낳고 내일 한 가지 낳아서 몇 만 가지를 낳게 되면 마디마디 굳센 화살을 만들어 세간에 어리석고 완악한 가슴을 뚫어서 충신열사의 간담으로써 물을 대어주어서 우리 일반 국민들과 더불어 이 혈죽 노래를 부르도록 하고자 한다. 혈죽이여, 혈죽이여. 어떻게 하여 운영에 좋은 산가지가 되어 묘당(廟堂)에 묘책을 정하고 어떻게 하여 긴 창이 되어서 변경에 국방을 지키도록 할꼬. 하늘에 물어도 대답이 없어 자못 내 마음만 미치는 것 같다. 혈죽이여, 혈죽이여. 어떻게 하여 비와 이슬에 우리 나무들이 모두 변하여 이 대로 되도록 하고 어떻게 하여 우리 밭도랑의 풀들이 모두 이 대로 화하도록 할꼬. 땅에 물어도 응답이 없어 다만 내 마음만 등등(騰騰)할 뿐이다.>
89. 過閔忠正公1)亭子聞蟬聲(과민충정공정자문선성)
민충정공 정자를 지나다 매미 소리를 듣고
閔公亭畔夕陽明(민공정반석양명)
垂柳殘花非舊情(수류잔화비구정)
猶有淸蟬2)如戀主3)(유유청선여연주)
抱柯頻發永歎聲(포가빈발영탄성)
민충정공 정자 곁에 석양이 밝게 비치는데
수양버들 남은 꽃들은 옛 정취가 아니구나.
맑게 우는 매미는 임을 그리워하는 듯하니
가지를 끌어안고서 자주 긴 탄식을 한다네.
0. 有感(유감) 느낌이 있어
萬事營爲總是虛(만사영위총시허)
閉門無語獨看書(폐문무어독간서)
百年長夢如難覺(백년장몽여난각)
試看人心未發初(시간인심미발초)
꾸려 나가는 모든 일들 이 모두가 허사로세
문을 닫고 말없이 홀로 책을 보노라.
백 년의 오랜 꿈에서 깨어나기 어려우니
인심이 드러나지 않은 그 처음을 볼 일이다.
<산남의진유사(山南義陣遺史)32p > 동엄 정환직 선생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