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일이다. 내가 짧게나마 살아온 삶과 앞으로 살아내야 할 삶 말이다. 삶은 너와 내 것 할 것 없이 누구나의 것이나 위대하다. 가난한 자의 삶이라고 더 못할 것도, 돈 많은 자의 삶이라고 더 나을 것도 없다.   누구나가 저마다 말못할 애로를 양껏 품고 힘겹게 살아간다. 하여 오롯이 한평생을 살아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인간은 누구나가 위대하다. 나는 직장생활하면서 내 부모님이 정말이지 위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30년간 한 직장을 다녀내신(다니신 아니고…) 어머님의 삶이 그러하게 느껴졌고, 한평생 글만 써오신 아버지 삶이 그러하게 느껴졌다. 고백컨대 한때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리라고 다짐했었다. 가난뱅이 소설가. 엄마를 힘들게 하는 남편. 유년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친구네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보다는 범접하기 어려운 인격체였다. 유년시절 어머니는 친구네 엄마처럼 세간을 돌보는 엄마보다는 식솔을 책임지는 뭇아버지들의 모습이었다. 뭔가 뒤바뀐 삶이, 우리집에는 일상처럼 돼 있었다. 어린 나의 눈에는 그것이 무척이나 불만이었고 탐탁치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했던 것은 우리집을 찾는 손님은 죄다 아버지의 차지였다. 물밀듯이 밀려드는 사람과 사람들.나는 그 틈바구니 속에서 이상한 세상을 체험했다. 사람들은 아버지에게 쪼아리고 읊조렸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참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었다. 우리집을 먹여살리는 건 엄마인데, 엄마에게는 인사 시늉만 하는 사람들이 아빠 앞에서는 굽실거린 거였다. 거기에 대해 ‘대체 왜?’ 라고 의문을 품기에는 나는 무척 어리숙하고 유치했다. 그저 그 모습이 이상하다는 것만 어림잡아 짐작할 뿐이었다. 나는 그런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내고 대학을 들어가 사회인이 됐다. 기막힌 운명은 내가 기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 삶은 한마디로 인터셉터의 삶이었다. 가족의 꿈을 좁먹고 자란. 기자의 꿈은 원래 누나의 꿈이었다. 평범한 직장인의 꿈은 어머니의 꿈이었고, 작가의 꿈은 원래 아버지의 꿈이었다. 정치인의 꿈은 원래 형의 꿈이었다. 나는 먼저 누나의 꿈을 채왔다. 그리고 기자가 됐다. 글을 쓰고 살고 싶었던 꿈은 애오라지 아버지의 꿈에서 차용한 것이다. 그러면서 어머니처럼 고정적인 수입을 얻기를 원했다. 이 셋을 갖추고 나는 또다른 꿈을 품었다. 정치인이 되는 거였다. 40대 초반. 하나 그 꿈은 이제 끝장이 났다. 내 스스로 꿈의 풍선을 뾰족한 바늘로 깊숙이 찔러 넣었다. 대신 위대한 글은 못 남겨도 사람들에게 도움되는 저서를 많이 남기는 사람으로, 작가에 좀 더 천착해 살아가기로 했다. 나의 꿈은 다작의 작가인 것이다. 그 다작은 나에게 죽음의 기도이기도 하다. 누구나 사람은 죽는다. 태어나면 언제고 한번은 죽는다. 우리네 인생은 그 죽음길을 하염없이 걷는 행군이다. 어떤 짐을 이고 가느냐, 그것이 삶의 요체다. 나는 아버지의, 어머니의, 누나의, 형의 꿈을 조금씩 훔쳐 먹으며 20대를 보냈다. 이제 내 꿈을 키워가야 할 때다. 이제 제대로 죽을 준비를 하면서 살아가야 할 때다. “참 아름다운 세상, 한판 잘 놀다 간다.”고 묘비에 깊숙이 새기리라…./심보통 2012.5.3.짓고 2023.5.3 나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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