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이 지금쯤 나왔더라면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어젯밤 김진명의 <최후의 경전>을 읽고 ‘유대인’이 궁금해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를 지낸 정우량 선생이 쓴
<숨기고 싶은 그들만의 세계사>에서 홀로코스트 편을 찾아보았다.
그러다 문득 유대인이 미움받게 된 요인 중 하나인 배신자 유다가 떠올라, 몇 해 전부터 버리려고 따로 빼둔 서울대 철학과를 나온 남한이 쓴 <유다와 세 번째 인류(2008)>에 손이 갔다.
‘아, 이런 역작을 버리려했다니!’
이 소설은 그야말로 엄청난 소설이다. 일반적인 상상의 범위를 뛰어넘는 무서운 상상력이 우쭐우쭐 힘을 발휘한다. 여기에 깊은 인문학 사유가 철철 넘쳐 흐른다.
곧 닥칠 우리들 (암울하거나 순리이거나 한) 미래가 녹록지 않은 철학자의 탐구와 만나면 어떤 웅숭깊은 이야기가 되는지 보여준다.
이 소설 꼭 한번씩 보시길!
(본문 중)
아이의 엄마는 2주에 한 번씩 놀러 왔다.
“엄마,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그래, 나도 H 네가 보고 싶었단다.”
한참의 따스한 포옹 끝에 아이가 물었다.
“엄마, 옛날 사람들은 아빠, 엄마, 아이가 모두 다 한집에서 살았어?”
“너도 지금 아빠랑 살잖니.”
“엄마와 아빠, 그리고 소설에서 읽었는데, 뭐라고 하더라…. 맞아, 할아버지, 할머니,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살았던 적이 있었대.”
“그래, 그때는 가정이 사람들의 생존을 위해 필요했던 때였지.”
“지금은 왜 그렇게 살지 않아?”
“가정보다 휠씬 더 소중한 각자의 꿈이 있기 때문이란다.”
엄마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예전에는 네 말처럼 남녀가 반드시 가족을 이루고 살았단다. 그땐 혼자 벌어서 먹고 사는 게 쉽지 않았던 시절이기도 했어. 특히 여자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에서 가장 커다란 기쁨을 얻었지. 그런데 이제는 많은 게 변했단다. 남자든 여자든 자신의 일이 더 중요하게 되었고 또 사랑할 대상을 갈라테아에게서 찾게 되었지. 이젠 그 누구도 가족 때문에 개인의 욕구를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단다. 가족은 말하자면 일종의 억압 같은 거니까…….”
/<유다와 세 번째 인류> p31, 남한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