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오랜 세월 당뇨를 앓고 있는 어머니는 마을 경로당에서 식사도 잘 못하신다. 당뇨란 병의 특성상 하얀 쌀밥만 먹기에는 곤란한 측면이 있어 외롭지만 집에서 혼자 밥을 드실때가 많은 편이다.
천성이 활동적이고 사교적인 성격과도 거리가 있어 식사후에도 집에서 제법 먼 거리에 자리한 경로당으로 굳이 발걸음을 하지 않으시고 혼자 있는 편이다.
이런 독거노인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이들 중에 생활지원사라는 제도가 있다. 어느 날은 어머니가 생활지원사 이야기를 꺼내셨다. “아이고 젊어서 그런지 손이 얼마나 매운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연인즉 하루는 어머니가 힘이 하나도 없이 축 쳐져 있으니 어머니를 보러 오는 생활지원사가 왜 그러냐고 묻더란다.
몸이 어찌나 안좋다고 했드니 대뜸 여기 누워보라며 방바닥을 가르켰다. 누운 어머니를 상대로 마사지를 하는데 얼마나 꼭꼭 야무지게 주물렀는지 때론 아플 정도였단다. 그러고 나니 어머니 몸이 시원하면서 한결 가벼워졌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자식도 못하는 일을 해줬다는 생각에 어떻게 고마움을 전해야 할지 아직도 생각중이다. 어머니 집에는 생활지원사와 함께 그린 그림들과 만들기 작품들이 즐비하다. 마음도 나누는지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아쉬움도 드러냈다.
생활지원사는 65세 이상의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 기초연금수급자 중 홀로 일상생활이 어려워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을 대상으로 안부를 확인하고, 기초적인 일상생활을 도우는 활동을 한다.
현재 영천시에도 영천시종합사회복지관을 비롯해 영천노인복지센터, 마야실비노인요양원 등에서 총 180여 명의 생활지원사가 3000명 가까운 어르신들의 집에 방문하거나 전화로 안부를 확인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비단 맞춤 돌봄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평상시에는 어르신과 전화로 일상 이야기를 나누며 안부를 묻는다. 그러는 중에서도 평소와 다르다는 눈치가 보이면 급히 어르신 댁을 방문할 때도 있다. 그리고는 어르신의 안색을 살피고, 몸 상태를 체크해 즉시 119에 신고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심한 경우에는 어르신을 응급실로 모시고 가서, 검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보살피고 귀가까지 책임지기도 한단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예사스럽지 않다.
상황이 열악한데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어르신들을 돌봐주는 일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생활지원사이지만 때론 어르신이 못하는 사소한 일이나 청소도 해준다. 가까이에 있지 않은 자식들을 대신해 잔심부름을 해주거나 말벗 노릇을 하는 셈이다. 그뿐이 아니다. 인지 능력이 저하돼 어떤 사고가 날지 늘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자잘한 일 하나하나마다 대비책을 강구하는 일을 하면서 어르신들이 곤경에 빠지지 않도록 돌본다.
연로하고 병마저 가득한 어머니를 직접 모시겠다는 지극한 효심 따위는 내겐 아예 없다. 하지만 당뇨를 오래 앓으시면서 살이 쪽 빠져 꼬들꼬들 말라버린 어머니가 집에만 갇혀 지내는게 안타까울 뿐이다. 자식이 조금만 더 효심이 지극하다면 분명히 옆에서 말벗도 되고, 아프다고 할 때마다 마사지도 해드릴텐데 그 조금의 효심이 모자라 택한 것이 생활지원사다. 최선이 아닌 차악의 선택지를 뽑은 셈이다. 이제 여기서 더 힘들어지면 또다른 선택은 시설이나 요양병원을 고민하는 일이다. 이런 돌봄이 있는 것이 어디인가.
초고령 그리고 고립의 시대. 지역에 경로당이 있고, 노인 복지관이 있지만 그 곳에도 가지 못하는 어르신이 있다. 이런 사각지대마저 줄이려면 지역으로 찾아가는 주민 밀착 프로그램 체계를 보다 다양한 정책으로 좀더 가까이에서 보살펴야 하는데 생활지원사들의 역할이 더 커져 보인다. 노인학대가 일어나는 일부 시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늘 가슴이 철렁하지만 돌보는 이들을 믿을뿐 다른 방법을 모른다. 어머니도 나도 생활지원사라는 이름의 천사를 믿고, ‘든든한 이웃’이라고만 생각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