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 난생처음 우리집(*통상 ‘우리 집’이라 띄어쓴다)을 마련하던 날, 아내가 부탁했다.
제발 집안 곳곳에 액자를 걸지 말라고. 또 본 책은 그날그날 정리를 해 달라고. 그러겠다고 했다. 뭐 그쯤이야….
그러나 1년이 흐르는 동안, 내 버릇은 남 못줬다.
호시탐탐 이 액자를 여기 걸까 저 액자를 저기 걸까, 아내 눈치를 살피며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기만 기다렸다.
결국 올초 안방에 하나, 서재에 하나, 거실 욕실 앞에 하나, 큰방과 작은방 사이 벽면에 하나를 떡하니 내걸었다.
아꼈다가 저승갈 때 가져 갈 일도 없고, 일면식 없는 작가에 대한 모독과 작품에 대한 모욕을 그만 거두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1년을 기다린 건 그 작품들이 하나 같이 아내 선호가 아니어서, 그 마음을 헤아려야 했던 것이다.
아무튼 아내는 승락했다. 마음대로 거시라고… 체념하듯, 나도 당신 마음 이해 못하는 건 아니라는 듯.
서재는 1년 만에 책과 짐이 늘어 대학교수로 있는 누님이 와서 보고도 숨이 막힌다고 했다.
“여기서 연구가 되나.”
“응. 난 되는데….”
신혼초 나의 작업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던 아내는 퇴근만 하면 내 서재꼴을 영 못마땅히 여기며 싸움을 걸어왔다. 그걸 이해시키고, 아내 스스로 이해하는 데만도 2년은 걸린 것 같다.(포기일지도…)
오늘 아침, 비좁아진 서재, 그 빈 한쪽 벽면에 ‘중사신통(重思神通)’ 넉 자 족자를 내걸었다.
아내가 라온이를 안고 서재로 놀러왔다가 기가 차다는 듯이 아무 말 없이 족자를 휙 훑더니 나가버렸다.
“다 이유가 있어.”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그 이유… 영남일보 복간 1기 출신인 경향신문 김경은 선배가 만들어줬다.
강의 차 대구에 와서 영남일보 김신곤 편집국장과 윤철희 부국장과 술자리를 가졌다. 그리고 막차를 타고 나는 대전으로, 선배는 서울로 갔다.
얼큰하게 취해서는 기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인생 선배가 마흔인 후배에게 어떻게 살라고 조언을 한다면 하고 물었다.
선배는 망설임 없이 정명하듯 말했다.
“절문(切問)하고, 행동하라!”
선배는 부연했다. 논어 장자편에 나오는 말이라고.
“박학(博學), 독지(篤志), 절문, 근사(近思) 이걸 하라.”
아침에 일어나 논어를 빼들었다. 원문을 살폈다.
-자하가 말했다. “배우기를 널리 하고 뜻을 독실히 하며,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현실에 필요한 것을) 생각하면 인(仁)이 가운데 있다.” 子夏曰: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
원문은 이렇게 이어진다.(*아래는 풀이만)
-이 네 가지는 모두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분변하는 일이니, 힘써 행해서 인(仁)을 하는 데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여기에 종사하면 마음이 밖으로 달리지 않아 보존하고 있는 것이 저절로 익숙해진다. 그러므로 인(仁)이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정자가 말씀하였다. “배우기를 널리 하고 뜻을 독실히 하며,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하는 것을 어찌하여 인이 이 가운데 있다고 말하였는가. 배우는 자들은 이것을 생각하여 알아야 하니, 이것을 알면 바로 위로 통달하고 아래로 통달하는 방법이다.”
-또 말씀하셨다. “배우기를 널리 하지 않으면 지킴이 요약되지 못하고, 뜻이 독실하지 못하면 힘써 행할 수 없으니, 자기에게 있는 것을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인이 가운데 있는 것이다.”
-또 말씀하였다. “가까이 생각한다는 것은 類로써 미루는(類推·유추) 것이다.”
-소씨가 말했다. “배우기를 널리 하기만 하고 뜻이 독실하지 않으면 크기만 하고 이룸이 없으며, 범연히 묻고 생각하면 수고롭기만 하고 공효(효과)가 없다.”
가만 읽다보니 ‘중사신통’ 넉 자 족자가 생각났다. 2009년 여름, 대구 서구청 이동중 사무관이 직접 써 선물한 족자의 뜻과 상통했다.
심지훈: 인생 선배가 마흔인 후배에게 어떻게 살라고 조언을 한다면….
김경은: 절문(切問)하고, 행동하라!
이날 선배의 강의 주제는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인터뷰 법’이었다.
10년전 서예가 이암 이동중 선생은 내게 그렇게 하라고 주문을 걸고 있었다. 나는 어렸고,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나이 마흔, 그 의미를 안 것만으로도 다행. 절문하고, 행동할 땐 중사신통의 자세로. 살아야지, 살아가야지.
/심보통 2019.5.14 짓고
2023.5.14 일부 수정 후 다시 나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