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銘)에 새긴 말은 다음과 같다. 선군(先君)들께서 동방에 나라의 경계를 정하시고는 그 산천의 모양에 따라 크고 작은 현(縣)과 주(州)를 두고 밝게 훈계하여 깨우치시기를, 조금도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게 하라고 하셨지만 운수(運數)에 따라〔각 고을은〕 스스로 괴로운 〔상황에〕 매이기도 하였노라. 이지현(梨旨縣)은 영천에 예속하였는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옛 고을 사람이 스스로를 닦지 못해 온 고을이 뒤집어져 누대에 걸쳐 부끄러움을 이어 왔었네. 〔그리하여〕 차별로 폐현(廢縣)된 〔고을이 이제 나라에 은을 가져다 바치는〕 은소(銀所)로 바뀌어 버렸으니, 세월이 흘러 어떤 뛰어난 이가 있지 않으면 그 억울함을 풀어줄(昭雪) 자가 누구던가 ! 여우도 죽을 때는 고향으로 머리를 돌리나니 그 뜻이 진실로 깊도다. 황제(天后)의 헤아림이 이미 넉넉(優)하고 나라의 은혜 또한 도탑구나. 아! 이제 나는 알았네. 〔이 세상의〕 이치는 반드시 성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는 것을. 한 사람의 장부(丈夫)가 지혜롭지 못하여 〔그 동안〕 굴욕을 당한 사람이 〔도대체〕 몇이었던가! 진실로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능히 〔고을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 이 두 사람에게 힘입은 것이니, 오직 사람의 옳고 그름에 따라 혁파(革罷)되기도 하고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기도 한다네. 이렇게 변하는 것을 잘 보려거든 여기 새긴 글을 볼지니라 ! * (아쉽게도) 이 비문은 지금 남아 있지 않다. (원문) 梨旨縣 在郡西三十里本永川梨旨銀所 高麗末 陞爲縣 朝鮮太祖時屬新寧 崔瀣碑文曰 至元後元年上護軍安子由等朝京師回以天后命復駙馬先生若曰永州梨旨銀所古爲縣中以邑子違國命廢而籍民說白金稱銀所者久今其土人那壽也先不火幼宦禁中積給使勞以其功陞鄕貫復爲縣於是王敎有司行之如中旨明年那壽奉使東歸爲鄕里榮以故處卑狹相地徙居州之西距故所若干步置縣司長吏咸若初又五年也先不火函香繼至謂本縣與復遷徙顚末不可無述謁嗣王書之碑予不得以老辭則爲之銘有以警夫觀者焉那壽官奉議大夫甄用大監也先不火官中議大夫中瑞司丞姓皆李氏本國又封那壽信安君也先不火號永利君以逮三代俱得追封以其子貴當更受天朝封贈此在所略銘曰若國先君誕奠東表隨厥山川相勢大小立縣置州明訓以曉曰毋減增命或自剿維縣梨旨隷永之州傳昔邑子有不自修擧縣顚倒帶累承羞廢爲銀戶世載悠悠不有挺生昭雪者孰狐正首邱斯義允篤后命旣優國恩孔縟噫我知理固盈縮一夫不慧受屈幾人允而能復賴此二君惟人善否惟革惟因善觀變者視此刻文 碑文今無  강역 (疆域) 동남으로는 연일과 경주에 접하고, 남으로는 청도와 접하며, 서로는 군위, 달성, 경산과 경계를 같이 하고, 북으로 청송과 경계를 같이 한다.  동서(東西)의 거리는 90리로 동경(東經) 128도 56분이요, 남북(南北)은 90리로 북위(北緯) 35도 58분이다. 땅의 형세는 둥글고 남쪽 면이 비스듬히 기울었다. (고을의) 가장자리는 산악(山嶽)이고 온도는 평균 28도 9분이다. 가장 높을 때는 섭씨 39도이고, 가장 낮을 때는 섭씨 2도 2분이다. (원문) 東南接延日慶州 南接淸道 西界軍威達城慶山 北界靑松 東西相距九十里 東經一百二十八度五六 南北九十里 北緯三十五度五八 地勢圓 南面傾斜 周圍山嶽 溫度平均二八.九 高三九.00 低0二.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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