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출판하게 된 법문집은 지난 1년간 법상에서 설법한 내용 중에 몇 가지를 간추린 것입니다. 열심히 법문을 듣고, 기도를 하는 불자들을 만날 때마다 뜨거운 구도의 열정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함께 밭을 가는 농부 같은 마음으로 설법의 내용을 분류하여 편집해 보았습니다. 구도의 길에서 행복의 밭을 가는 모든 분들께 감로의 법비가 내려지고 불은(佛恩)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하오며, 법문을 엽니다. 보현사 도량에서 석해공 합장     (지난호에 이어) 적반하장이라더니 목숨을 구해주었는데 생명의 은인에게 돈까지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 자라가 그럴 수 없다며 순순히 재물을 내놓지 않자 자라 장수는 인간 자라를 도둑으로 몰아 관아에 고소하였습니다. 온갖 모략을 다하여 관아에 고소한 자라 장수는 의기양양해졌습니다. 고소한 내용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어서 곧 인간 자라는 처형 되고, 짐승 자라와 여인에게서 받은 재물이 모두 자기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관아에서는 인간 자라를 처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고, 곧 판결문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인간 자라는 낙심하였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처지라 사필귀정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판결문을 써내려가는데 어디서 갑자기 나방이 한 떼 나타나더니 관리의 얼굴과 팔뚝, 손목과 붓대, 종이, 벼루 할 것 없이 떼로 달라붙어 관리로 하여금 한 글자도 제대로 써내려 갈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고을의 우두머리는 이상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때야 비로소 인간 자라를 불러오게 했습니다. 자라는 일의 자초지종을 남김없이 이야기했고, 사실을 알게된 우두머리는 자라의 공로를 치하하고 돈만 알고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 했던 자라 장수를 처형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재미있는 이 이야기는 은혜를 갚지 않는 인간, 짐승만도 못한 인간에 대한 비유도 될 수 있지만 미물이나 사람이나 그 어느 생명이든 자비로운 마음으로 대하는 보살다운 보살의 마음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비유이기도 합니다. ‘대장부론(大丈夫論)’이라는 책을 보면 보살이라면 이러한 때 눈물을 흘릴 것이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첫째는 공덕을 닦는 사람을 보았을 때다. 기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둘째는 공덕 없이 고뇌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다. 불쌍한 생각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셋째는 크게 베풀어주는 사람을 보았을 때다. 그냥 고맙고 기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노보살님이 죽어가는 짐승들을 위해 기도하는 자비심과, 전 재산을 털어 자라의 생명을 지켜준 인간 자라의 자비심이 감동스럽습니다. 아주 평범한 일 같지만 이러한 자비심이 얼마나 거룩하고도 청정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기에 감동이 큰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어려운 사람, 어려움에 놓인 사람을 그냥 보고 지나칠 수 없는 양심을 갖고 있습니다. 양심으로는 불쌍한 생각이 들고, 도와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그 양심에 못견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그것이 보통 사람의 양심입니다. 그런데 마음과 달리 행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저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과연 잘하는 것인가’를 먼저 곰곰이 따져보는 사람입니다. 물론 도와주는 것도 잘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따져보다가는 처음에 생각한 마음과는 달리 인색하게 베풀게 될 때가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좋은 것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좋지 않은 것을 골라주기도 하고, 일단 베풀고서 나중에 후회하 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불쌍한 사람을 도우면서 잔소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제는 정신 차리고 살아라.” “평생을 빌어먹고 살래?”하면서 경멸하는 말투, 좋지 않은 소리를 하면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에는 ‘내가 그래도 너보다는 낫다’는 우월감을 갖고 싶어 하는 심리가 깔려 있기도 하고, 베푸는 것에 대한 공치사를 해서 남에게 자신이 자비로운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그야말로 자연스럽지가 않습니다. 인위적인 베풂입니다. 베푸는 일이 자연스러 운양심과 행동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면 공덕이 될 수 없습니다. 베푼다는 것, 자비심이 우러나와 남을 도와주는 일은 이런저런 따위의 저울질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과연 이것을 도와 공덕이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를 따져 돕는 것이 어찌 공덕이 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상대의 지위를 보고 돕는 사람도 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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