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은 이튿날인 어제, 서울에서 2박스의 책이 도착했다. 저녁답에 정갈하고 야무지게 포장돼 내려온 박스를 풀어 헤쳤다. 근년의 책들과 함께 누렇게 빛바랜 책들이 두루 섞여 특유의 책향이 피어올랐다. 한 권 한 권 앞뒤표지와 목차를 살폈다. 야무진 소장자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관련 신문기사가 군데군데 꽂혀 있고, 어떤 기사는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책 크기와 마침맞게 액자처럼 장식돼 있었다. 깨알처럼 박힌 세로쓰기 책도 더러 보였다. 모두 38종. 상고사(上古史) 책들이다. 보내주신 분의 정성에 숙연해졌다. 전화를 드려 “힘이 닿는 대로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했다. <책의 敵>이 말한 고서의 가치를 어제 받은 38종 상고사 책들에서 느낄 수 있었다.      5. 나는 오래전부터 ‘우리 시대 작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궁고해 왔더랬다. 왜냐하면 내가 가는 작가의 길은 내 아버지로부터 이어져 내려왔기 때문이다. 내가 작가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일구어야 하는 까닭은 내 아버지가 내게 남긴 삶의 자세와 정신을 이어나가, 아버지께 누가 돼서는 안 되겠기 때문이다.  작가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는 결국 작가로서 어떤 글을 쓸 것인가와 쓴 대로 실천할 것인가의 문제일진데, 고백하자면 30대는 힘들더라도 좀 버거운 주제를 택해 쓰자는 심산이 있었다. ‘새마을운동’ ‘동학(東學)’ ‘협동조합’ 등이 30대 중반에 소화한 주제들인데,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것들이었다. 특히 동학은 한자어와 언어가 설어 생고생을 한 분야이고, 협동조합은 발상지로서 협동조합을 다루다 보니 A4용지 5장짜리 행정문서를 갖고 214쪽짜리 단행본을 만드느라 생똥을 싼 경우다.  내가 지금까지 행한 주제들의 공통점은 모두 정신사(精神史)에 맥을 대고 있다. 시대별로 가까운 것을 기준하면 <산남의진뎐, 구한말~현대>, <상주동학이야기, 1915~현대>, <퍼스트 펭귄 전준한 이야기 1927~1967>, <우리 동학, 1860~1894>, <히데타다와 신문왕이야기, 통일신라시대>가 된다.   작업한 순서는 시대순이 아니었지만, 작업을 하면서 또 작업을 끝내놓고 보니, 갈증만 더해갔다. 뭔가 시원찮은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새마을운동 정신은 어디서 왔고, 동학은 어디로부터 나왔고, 풍류도는 또 어디서 나왔는지 그렇게 어렴풋이 단군까지 가닿았다. 위서라고 판명된 <환단고기>를 비롯해 <원효결서(전2권)>, <단군의 나라(전3권)> <神市의 꿈(전3권)> 등을 통해 상고사 ‘워밍업’을 마쳤다. 한번도 본 적도, 들은 적도, 배운 적도 없는 이야기들로 부끄러워 어질어질했다. 배운다는 것, 안다는 것의 허망함을 체험한 시간들이기도 했다.  나라가 요동치고, 국운이 다했다, 망조가 들었다는 소리는 오래전부터 들려왔다. 그런데 그런 징조, 한탄, 진단이 휘몰아치면 시간문제일 뿐 결국 망국(亡國)은 현실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대한제국 위정자와 그 시대 사람들을 일러 ‘나라 말아먹은 자들’이라고 성토하곤 한다. 뒷날 살아남은 후손들이 ‘대한민국 사람들은 얼빠진 자들이었다’고 비수를 꽂게 될지도 모른다. 역사는 그렇게 돌고 돈다.   구한말 대종교를 일군 나철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神市의 꿈> 1권에는 이런 엄중한 글귀가 박혀 있다. “나라는 이미 깨어져 무너져 내리고 있었지만 그 백성들의 혼은 아직 살아 있는 게 분명했다.” <神市의 꿈> 201쪽 그러니까 망조 들린 대한제국의 백성들이었진정 ‘혼이 아직 살아 있어’ 이런 역사를 이어주었던 것이다.  “1945년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50년이 지났다. 이 사이에 우리는 6.25 전쟁의 참화를 겪었고 여러 차례의 정변도 치렀으며 크고 작은 많은 국제적 행사도 가졌었다. 그뿐인가. ‘아시아의 용’이니 ‘한강의 기적’이니 하면서 우리 경제의 급속한 발전에 전 세계가 경악과 시기의 눈초리로 장래를 점치기도 하였다.”  <우리 古代史> 11쪽 대한민국인들은 이 점을 가슴으로 아로새겨야 할 것이다. <우리 古代史> 발간사에는 또 이렇게 써있다.  “어떤 사서(史書)에 “나라에는 모습이 있고 역사에는 ‘얼’이 깃들어 있는데 모습이 어찌 ‘얼’을 잃고도 모습만으로 우쭐댈 수 있다고 할까?”라고 기술되어 있다. 일제 36년 간, 조선총독부의 식민통치정책으로 우리 역사책 50여종, 20여만 권이 불에 타고 고대 역사의 뿌리는 말살되어 우리 민족의 ‘얼’은 이 세상에서 온전히 사라졌다.”  아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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