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기 선생의 묘비명을 옮겨 적어 소개한다. 국한문 혼용체라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자 뒤에 한글을 붙여 적는다. 15세의 나이에 을미의병에 參戰(참전)하고 25세에 을사의병인 산남의진에 參陣(참진)하여 28세의 꽃다운 나이에 순절하였으니 어찌 용맹하다 하지 않으랴. 山南義陣中軍將月城李公之墓(산남의진중군장월성이공지묘) 여기 우리 겨레의 義士(의사) 李公世紀(이공세기)의 무덤이 있다. 그는 겨레를 위하여 그 목숨을 바쳤다. 우리 어찌 그 遺骸(유해)이나마 疎忽(소홀)히 하랴. 그의 字(자) 士玉(사옥)이오 先世(선세) 慶州人(경주인)으로서 靑松(청송)에 옮아 살았으며 그의 몸 短小(단소)하였으나 膽力(담력) 세었고 愛國心(애국심) 强烈(강렬)하여 四二二九年(4229년) 丙申(병신) 그 前年(전년) 事變(사변)의 保(보) 鄕曲(향곡)에 傳播(전파)되어 義兵(의병)이 일어나자 그는 弱齡(약령) 十五(십오)로 奮然(분연)히 총을 메고 往參(왕참)하였으며 四二三九年(4239년) 丙午(병오) 그 前年(전년) 脅約(협약)의 報(보)로 또 義徒(의도)를 이끌고 鄭公鏞基(정공용기)의 山南義陣(산남의진)에 參盟(참맹)하니 鄭公(정공)은 그 義勇(의용)을 壯(장)히 여겨 처음 左炮將(좌포장)으로 하였더니 鄭公(정공)이 敵(적)에게 속아 붙잡히고 李公韓久(이공한구) 義師(의사)를 대신 거느리자 李公(이공)도 士玉(사옥) 같은 이 百人(백인)만 있으면 내 걱정 없겠다 하여 左營將(좌영장)으로 하였으며 鄭公(정공)의 出獄 再擧後(출옥 재거후) 立巖(입암)에서 그는 그 거느린 伏兵 一隊(복병 일대)로서 먼저 敵(적)을 치다가 戰勢 不利(전세 불리)하여 鄭李兩公(정이양공) 및 여러 同志(동지) 죽자 다시 鄭公煥直(정공환직)을 받들고 그는 中軍(중군)으로써 轉戰(전전)하다가 鄭公(정공) 또 淸河(청하)에서 붙잡히자 大將(대장)을 中途 奪回(중도 탈회)하려 河陽(하양)까지 달렸으나 못 미치고 八公山(팔공산)에 依據(의거)하다가 다시 崔公世翰(최공세한)을 받들어 普賢山(보현산)에 진 쳤으나 崔公(최공) 또 붙잡히매 스스로 義士(의사)를 거느려 그 麾下(휘하)에게 자신을 中軍(중군)으로 부르게 하고 장차 대장감을 구하며 大業(대업)을 이루려 하였으며 前日(전일) 立巖(입암)에서의 輕擧(경거)를 뉘우쳐 卽日(즉일)이면 前(전) 主將(주장)의 墓(묘)에 致奠痛哭(치전통곡)하였으며 長鬐(장기)를 攻陷(공함)하고 北東大山(북동대산)에 依據(의거)하였으나 힘의 差(차) 懸殊(현수)하여 七顚八零(칠전팔령) 解散(해산)하지 않을 수 없는 地頭(지두)에 이르러 마침내 붙잡혀 敵(적)을 痛罵(통매)하다가 問訊(문신)하는 敵官(적관)에게 내 敵(적)을 죽여 復國(복국)을 못한 바에 죽음이 있을 뿐 무엇 묻느냐 하고 椅子(의자)로 쳤으며 三十年刑(30년형)으로 되매 내 늙으면 나가 依據(의거)를 못하리니 차라리 죽으리라 하고 獄門(옥문)을 깨뜨려 다른 囚從(수종)을 탈출시키고 毅然(의연)히 죽음에 나아가니 때 四二四二年(4242년) 己酉(기유)라. 한 누이 있어 그 시체를 거두어 永川(영천) 紫陽面(자양면) 普賢洞(보현동) 騎龍山下(기룡산하) 陰地番嶝(음지번등) 未坐(미좌)에 返葬(반장)하였으며 四二九三年(4293년) 三一節(삼일절) 建國功勞賞(건국공로상) 내렸다. 公(공)의 一名(일명) 世紀(세기)라 하며 考(고)의 諱(휘) 後(후) 妣(비) 吳氏(오씨)요 配(배) 崔氏(최씨)로 一子(일자) 삭불 孫(손) 震雨(진우) 있다. 이에 本懷(본회)에서 墓碑(묘비)를 세워 그 不佞(불녕)이 그 事蹟(사적)을 大略(대략) 거두어 적고 이에 銘詞(명사)를 올리노니 보현재 넘어닫는 회오리바람  아직 왜적을 꾸짖는 소리 동해에 솟아오른 붉은 햇살  아직 분노에 부릅뜬 눈초리 임이여 고요히 쉴지어다  흉적은 물러났고 겨레는 임을 잊지 않아 아아 임이여 회오리 바람이여  붉은 햇살이여 으아 檀紀(단기) 四二九七年(4297년) 十月(10월)  日(일) 山南義陣記念事業會(산남의진기념사업회)  建(건) 豊山(풍산) 柳奭佑(류석우) 撰(찬) <山南義陣遺史 제5편 列傳 P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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