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해가 바뀌었다. 경제는 움 츠러들어 중소기업들은 힘들어하는 데 정계는 온통 권력다툼으로 해를 넘기고 있는 듯하다. 百年河淸(백년 하청)이라지만 올 한해는 국민이 안 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정치가 펼쳐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禹在龍 義士 略歷(우재룡 의사 약력) ①  禹在龍(우재룡)은 字(자)는 利見 (이견)이오 號(호)는 白山(백산)이 며 貫鄕(관향)은 丹陽(단양)이오 易 東先生(역동선생)의 二十一世孫(이 십일세손)이라. 變名(변명)은 景玉 (경옥) 變姓(변성)은 金海金(김해김) 가 變姓名(변성명)은 金漢朝(김한 조) 金在瑞(김재서) 金尙浩(김상호) 라고 할 때가 여러 번 있었다. 檀紀 (단기) 四二一七(4217), 西紀(서기) 一八八四(1884), 高宗甲申(고종갑 신)에 昌寧郡(창녕군) 旺山里(왕산 리)에서 出生(출생)하다. 父(부) 邦 熙公(방희공)은 武科司果(무과사과) 로서 性稟(성품)이 豪俠(호협)하였 고 母(모) 晉州姜氏(진주강씨)는 溫 順(온순)한 婦人(부인)의 姿態(자태) 로서 그 사이에 딸 五兄弟(오형제) 를 두고 만득으로 아들 하나를 낳았 다. 생활형편에 따라서 거주를 자주 변경하게 되어 昌寧(창녕) 왕산에서 淸道 豊角(청도 풍각)으로, 풍각에 서 靑松 楡田(청송 유전)으로, 유전 에서 永川 大田(영천 대전)으로, 대 전에서 大邱 神堂(대구 신당)으로 轉居(전거)하였으니 그 동안 청송에 서 沈德汝公(심덕여공) 門下(문하) 에 入學(입학)은 하였으나 性格(성 격)이 본래 난잡한 관계로 꾸지람을 많이 들었다. 나이 十五歲(십오세)에 母親喪(모친상)을 당하고 방랑한 행 동을 시작하였다가 十八世(십팔세) 에 尙弼鉉公(상필현공)의 女婿(여 서)로 되어 妻叔(처숙) 尙百鉉公(상 백현공)을 따라서 서울 구경을 하니 서울에는 벌써 外國(외국) 사람들 의 내왕이 많고 세상은 혼돈하게 되 더라. 二十歲(이십세)에 中隊長(중 대장) 羅鎬(나호)의 部下(부하)에 입 대하여 兵丁(병정)생활 三年(삼년) 을 하면서 보니 國家主權(국가주권) 은 점점 타락되고 國內(국내) 各地 (각지)에 소동이 일어나는지라. 이때 에 南鮮義兵大將(남선의병대장) 鄭 鏞基公(정용기공)이 被執(피집)되 어 大邱(대구)에 체수되니 憂國之士 (우국지사)들이 모두 방문하고 탄식 하더니 鄭大將(정대장)은 석방되어 향리에 돌아가서 義兵(의병)을 다 시 일으켰다더라. 公(공)은 이 소문 을 듣고 鄭大將(정대장)의 人氣(인 기)를 모앙하여 同志(동지) 數十名 (수십명)과 약속하고 탈영하여 鄭大 將(정대장) 義兵陣(의병진)을 찾아 서 靑松(청송)지방에 들어섰다. 그 지방의 主人(주인) 梁主事(양주사) 를 교섭하여 義兵陣(의병진)에 面接 (면접)을 청하니 우리가 모두 머리 를 깎고 軍服(군복)을 입은 것을 보 고 질문이 심각하게 되는지라. 公 (공)은 소리를 크게 하여 대답하기 를 “우리 대한사람이 대한사람에 대 하여 이렇게 할 필요가 어디 있느 냐!” 하니 그 소리가 將所(장소)에 듣기었다. 鄭大將(정대장)은 그 辭氣 (사기)가 慷慨(강개)함을 듣고 들여 보내라고 특허를 내리었다. 鄭大將 (정대장)은 公(공)의 일행을 보고 크 게 기뻐하여 모두 각 부대에 편입시 키고 公(공)을 練習將(연습장)으로 지명하고 그 뒤에 兄弟(형제)의 誼 (의)를 허여하더라. 그때가 隆熙(융 희) 元年(원년) 丁未(정미) 七月(칠 월)경이라. 그로부터 전투의 길을 밟 는데 항상 진두에 활약하여 淸河邑 (청하읍)을 습격하고 다시 西北(서 북)으로 回軍(회군)하여 靑松(청송) 薪城(신성)에서 적을 격파시키고 紫 陽(자양) 접전에서 倭將(왜장) 一名 (일명)을 斬首(참수)하여 獻功(헌공) 하고 北進(북진)하다가 回軍(회군) 하여 紫陽(자양)에 또 침입한 왜적 을 격퇴시켰다. 軍中(군중)에 의론이 서울로 올라가기로 결정되어 군복 과 군수품 등의 준비로 각 부대가 모 두 각지로 파견되고 본부는 竹長(죽 장) 등지에 주둔하여 파견된 부대들 의 귀환을 기다리다가 立巖(입암)서 왜적과 교전되어 大將(대장)과 二三 部將(이삼부장)이 同時殉節(동시순 절)하고 本部將壇(본부장단)이 무 너졌다. 그때에 公(공)은 伏兵(복병) 하라는 명령을 받고 雀嶺(작령)으로 갔더니 廣川(광천)으로 伏兵(복병) 가던 李世紀(이세기)의 錯見(착견) 으로 軍機(군기)를 漏失(누실)하여 敗戰(패전)되었더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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