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건봉(宕巾峰)은 고을의 서쪽 10리에 있다.
손후익(孫厚翼)의 시(詩)에 읊기를,“어떤 탕건 쓴 객이 있어단정하고 엄연하게 왕의 마당에 서있네 옛 나라에는 왕의 문장 있으니그대에게 기대어 다시 오래 삶을 구하리” 라 하였다.
(원문) 宕巾峰 在郡西十里 孫厚翼詩 有何高帽客 端儼立王庭 舊國王章在 憑君復壽齡
성혈암(聖穴巖)은 고을의 북쪽 40리에 있는데, 기룡산 (騎龍山) 바위 속 동굴이 둥글게 휘어져 있어 가히 바람 과 비를 피할만하다. 임진왜란 때 선비(사인士人) 이현남 (李顯男)이 〔임고서원에 봉안되어 있던〕 성묘의 위판 (聖廟位板)을 임시로 이 동굴 안에 봉안하여 전쟁의 피해 를 면했기 때문에 이에 성혈(聖穴)이라 이름 하였다.
(원문) 聖穴巖 在郡北四十里騎龍山 巖穴穹窿可避
風雨 壬亂士人李顯男 奉聖廟位板 權安于穴中 得免
兵火 故仍名聖穴
입암(立巖)은 고을 북쪽 70리 입암리(立巖里)에 있 다.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1637)157)의 시(詩) 에 읊기를,“개울물 흐르는데 흘러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모든 꽃은 어지러이 피고 지네구름과 연기는 서로 모양 바꾸는데너는 홀로 지금이 어제와 같구나” 라고 하였다.
(원문) 立巖 在郡東七十里立巖里 旅軒張顯光詩 溪流流不返 百卉紛開落 雲煙互變態 爾獨今猶昔
백암(栢巖)은 고을의 북쪽 40리 자연(紫淵)이라는 못 위에 있는데, 운주산의 내룡(來龍)이다. 기이한 봉우리 와 가파른 절벽이 땅으로부터 높이가 수천 장(丈)158) 이나 된다. 절벽 위에는 늙은 잣나무가 있으니, 백암
(柏巖) 정의번(鄭宜藩1560~1592)159)159) 조선 중기 영천출신의 의병. 그의 부(父) 정세아(鄭世雅)와 함께 영천성 수복전투에 참여하였고,
이어 경주성 수복전투에 참여 하였다가 전사하였다. 이 발자취를 남긴 땅이다.
(원문) 栢巖 在郡北四十里紫淵上 來自雲住山 奇嶂 峭壁 拔地數千丈 上有老栢 栢巖鄭宜藩遺躅之地
독립암(獨立巖)은 고을의 북쪽 30리 용천 못 가운데 있는데, 그 높이가 100여장(丈)으로 이를 돌아나가는 물(의 양)을 헤아리지 못한다.
(원문) 獨立巖 在郡北三十里龍川淵中 高百餘丈 匯 水不可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