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연말 다양한 계층의 국민들을 모아놓고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했을 때 한 이야기가 있다. 대통령은 “국민의 안전을 살펴야 되고 또 국민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달래줘야 그게 정부”라며 “미래를 위해 공정한 시장과 교육 환경을 만들어서 사회가 민간 중심으로 잘 굴러가게끔 하는 이런 시스템, 그 업무를 하는 것도 중요한데 일단은 국민들이 못 살겠다고 절규를 하면 그거를 바로 듣고 어떤 답을 내놓을 수가 있어야 된다”고 했다.통계청이 지난달 29일 ‘2023년 4분기 가계동향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역의 현실과는 차이가 있지만 자료를 보면 지난해 4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502만4천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3.9% 증가했다. 하지만 물가를 반영한 실질 근로소득은 1.9% 줄어 2022년 3분기(-0.4%) 이후 5분기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실질 사업소득은 1.7% 줄어 5분기째 마이너스다. 이에 반해 고물가·고금리의 영향으로 지출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4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283만3천원으로 1년 전보다 5.1% 늘었다. 월세 등 실제 주거비가 12.3% 늘어난 영향이 크다.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이자 비용은 20.0%나 늘어났다. 이자 비용 증가율은 전 분기(24.4%)보다는 조금 낮아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고물가에 고금리까지 겹쳐 꼭 필요한 것 밖에는 지갑을 열 수가 없는 상황이다.거주비용과 먹거리, 공공요금을 비롯한 물가의 고공행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가계의 실질소득이 5분기 만에 감소세로 전환했다. 소득이 줄어든 가계는 먹고 입는 필수소비조차 줄이는 궁핍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전반적인 물가 인상으로 지난해 연간 실질 소비지출은 전년보다 2.1% 늘었으나, 필수소비라고 할 수 있는 식료품·비주류음료(-3.4%), 의류·신발(-4.2%), 가정용품·가사서비스(-3.5%) 등은 오히려 줄었다. 한마디로 먹고 입는 데 쓰는 지출이 가격 인상 폭을 앞설 정도로 줄었다. 이같이 서민들의 비명은 아직 본격적으로 터져나오는 게 아니지만, 남몰래 소리죽여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특히 최하위 계층인 1분위 가구의 가계지출은 전년 동기보다 0.5% 줄었는데도 월평균 29만1천원 적자였다. 가난도 어려울수록 더 가난해지고 어렵다는 얘기다.우리는 지금 선거를 한달 남짓 남겨두고 모두가 그쪽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래서 이 어려운 상황이 선뜻 피부에 와닿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경제 상황은 세수펑크로 정부 곳간이 텅 비어 써야 할 돈을 쓰지 않아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재정을 풀면 물가 고통이 있다고 하지만 지금 결과가 거꾸로다.어려운 사람에게 손 내미는 것이 정부고 행정이며 권력자들이 할 일이다. 도움을 기다리는 주민의 아우성과 현장의 절규에 신속하게 응답해 주는 것보다 우선할 것은 없을 것이다. 정치와 행정이라는 것은 선거보다 먼저 주민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민생 문제 해결에 세심한 관심이 더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