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짓는 게 일상이 되고 보면,어느 새벽엔 ‘글비’가 내립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처럼.어느 새벽엔 ‘별비’가 내립니다. 슝 떨어지는 별똥별처럼.머리에서 내리는 것 같지만 마음속에서 샘솟는 것입니다.엊그제 새벽엔 문득 ‘궁합’이란 별비가 내렸습니다.궁합: 각자 타고난 대로 행동해 서로 좋다고 여기는 상태.궁합에는 속궁합이 있고 겉궁합이 있습니다.혈기가 왕성해서는 겉궁합은 좀 못해도 속궁합이 좋으면 괜찮다고 믿어버립니다.겉궁합의 요체는 자라온 환경입니다. 인간은 한부모 아래 태어났어도 태어나면서부터 저마다의 본성을 타고납니다.그 본성을 갖고 부모 아래에서 자랍니다. 한 집안으로 보면 그렇게 자란 형제도 참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하물며 전혀 다른 뿌리의 이성이 같을 수야 있겠습니까.남과 남이 만나 부부가 되고, 부부가 뒤돌아서면 다시 남남이 됩니다.부부는 피를 나누지 않았기에 무촌이고, 무촌은 있을 땐 그 중요성을 모르다가조금이라도 부족하면 그 심각성을 알게 되는 공기와도 같습니다. 때문에 최상의 궁합은 남남이 만나 본성대로 살아 그 자체가 서로에게 좋아 보이는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그런데 남과 남의 대화, 조화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다르기 때문에 지지고볶고 싸우는 것입니다.싸움이 잦아지고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 겉궁합의 중요성을 새삼 떠올립니다.겉궁합이 비틀어지면 속궁합은 있으나마나한 것이 됩니다.마음이 동해야 하늘의 별을 따는 법이지그저 하늘의 별을 딸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가정의 평화는 결정적 국면, 불편한 상황에서는 침묵할 때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제 새벽엔 문득 ‘인생은 다면평가’라는 별비가 내렸습니다.설날을 하루 앞두고 새해 인사 문자가 도착합니다.가장 인상 깊은 것은, 정홍규 원로신부님의 새해 인사입니다. ‘새해 덕담도덕경 57장’이렇게 왔습니다.도덕경 57장을 펼쳤습니다.이 대목이 눈길이 갑니다.‘(상략)법령이 점점 부각될수록 도적은 많아진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말씀하셨다. 내가 무위(無爲)로 있으면 백성이 저절로 교화되고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면 백성이 저절로 바르게 되며내가 아무 일도 도모하지 않으면 백성이 저절로 부유해지고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백성이 저절로 소박해진다.’이어 편자의 토가 눈길을 끕니다.‘반론: 저절로 교화되고 저절로 바르게 되며, 저절로 부유해지고, 저절로 소박해지는 백성은 없다. (중략) 자고로 군주 중에 가장 어리석은 군주는 자기만 깨끗하면 백성이 모두 깨끗해질 것이라고 믿는 군주다.’무위, 고요, 그리고 아무 일 하지 않기, 욕심부리지 않기는 가정 평화, 조직 평화, 사회 평화를 위해 아주 중요합니다.단 나만 깨끗하면 모두 깨끗해질 것이라는 믿음 역시 욕심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채로 말이지요.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을 타고납니다. 불가에선 불사선불사악(不思善不思惡)이라고 합니다.한 인간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기 때문에 가리려 들지 말라는 의미입니다.하지만 인간은 부족하기 때문에, 또 평가를 좋아하고 즐겨해,다면평가를 통해 필히 ‘좋은 놈’ ‘나쁜 놈’을 가리려 듭니다.설명절만큼은 다면평가를 자제하면 좋겠습니다.어젯밤 티브이에서 설 특선 영화로 <도굴>을 방영했는데, 화교 출신의 도굴꾼 사무실을 카메라가 훑을 때 벽면에 ‘氣山心海(기산심해)’라는 액자가 눈길을 끌었습니다.‘기운은 우직한 산처럼 하고, 마음은 드넓은 바다처럼 하라.’설명절만 지나면 가정불화, 가정폭력, 이혼 심지어 살인 같은 사건사고가 불거져 나옵니다.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지 못하고,불편한 마음을 본성대로 드러낸 결과일 것입니다.편치 못한 마음이라면, ‘氣山心海’ 넉 자를 잘 품으시길 바랍니다.‘침묵’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설명절은 즐거워야 좋은 날입니다.설명절은 내년에도 또 옵니다.기다리고 포용해주십시오.결혼, 취업, 돈 등 온갖 문제는 당사자가 풀 일입니다.부모라는 이유로, 형제라는 이유로, 어른이라는 이유로상대를 말로 찌르고 비틀면서 상처주지 마시고 침묵하십시오. 그게 진정한 가족입니다.‘나는 너를 믿는다.’드넓은 바다처럼 마음을 내십시오. 이 한마디면 어렵사리 고향을 찾은 이도,우직한 산처럼 기운을 낼 것입니다.내년에는 좋은 날 맞을 것입니다.오늘 말 한마디가 즐거운 추억으로 소환될 것입니다.올해에도 댁내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새해 복(福) 많이 지으십시오./2023.1.22.(음력 1.1.)[글밥] 짓는 作家 심보통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