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군 봉화읍에 가면 황전마을이란 곳이 있다. 이 마을은 원래 영양남씨의 세거지 였으나 의성김씨인 김흠(金欽/1554~1611)이 황전마을에 장가 들면서 이 마을의 풍수입지(地勢)가 뛰어남에 감탄하고 이곳에 정착하여 입향조가 되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영양남씨들은 하나 둘 마을을 떠나게 되고 차차 의성김씨들의 집성촌이 되면서 ‘외손이 들어오면 본손이 망한다’란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이곳은 외손이 잘되는 곳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마을에서는 이러한 전력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한때는 외손은 물론이고 타성까지도 입향을 거부하였다. 30~40년 전만해도 의성김씨로만 120여 호가 살았으나 현재는 약 70여 호가 살고 있는데 타성이 약 25가구나 된다고 한다. 이 마을의 풍수적 특징은 배산임수(背山臨水)와 전저후고(前低後高), 전착후관(前窄後寬)이란 양택3요결을 모두 갖춘 양택길지로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누구나 아늑하고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태백산 천재단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마을 뒤 소태산(333.5m)까지 이어졌고 이 마을은 주산인 소태산을 배산으로 하여 주택이 들어서니 마을 전체가 남향이다. 그리고 마을 앞쪽에 선비들이 학문을 논하고 풍류를 즐기던 도암정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옆 동산재 끝자락에는 큰 바위 3개가 마을 앞을 가로막고 있으니 마을입구가 좁아져 전형적인 전착후관의 형태다. 『택경』에 이르기를 택지의 모양은 ‘‘전착후관부귀여산(前窄後寬富貴如山)’이라 하여 수구와 같이 앞이 좁으면서 뒤가 후덕하면 부귀가 산처럼 쌓인다고 하였다. 마을 안쪽 중심에 위치한 경암헌 고택(경북 민속자료 53호)은 원래 영양남씨의 종택으로 진사(進士) 남구수가 지었으나 훗날 입향조 김흠의 손자 김종걸씨가 증여받아 그들의 종택으로 사용하고 있다. 마을의 안산은 봉우리가 아홉 개로 이루어진 구봉산이고 청룡과 백호는 마을 뒤 주산에서 뻗어 내려온 지맥들이 마을을 잘 감싸주고 있어 바람의 피해가 없으며 형국적으론 금계포란형 혹은 비룡학소형국이다. 그러나 마을 앞 구봉산의 서편 학가산은 돌이 많아 오행으로 볼 때 화(火)산의 형태로 보이기에 마을에 화재의 위험성을 가져다준다. 다행이 도암정 앞에 저수지가 조성되어 있어 그 화기를 비보해 줌으로 화재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다. 실제 이 마을에는 마을 앞 저수지 조성 전에는 화재가 빈번하였으나 저수지 조성 후에는 화재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배산임수 전저후고, 전착후관이라는 양택3요결을 모두 갖춘 이 마을은 과거 조선조에서부터 뚜렷한 큰 벼슬이 나질 않다가 근대사에 들어 10여명의 판검사를 비롯해 많은 공무원들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한때는 봉화군 전체에서 마을 단위별로 보아 제일 많은 숫자의 각종 공무원들이 배출되었다고 하니 집집마다 혹은 한집 건너 1명씩은 꼭 공직이나 교직에 진출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을 앞 들판이 넓지는 않으나 농사로 밥 굶는 이가 없었으니 부귀가 보장된 평온한 씨족마을 집성촌부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