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좋던 사이에도 정치 이야기가 길어지면 슬쩍 건너지 못할 강을 건너 버립니다. 그런 일이 잦고 심해지면 마을과 지역안이 패로 갈라져 갈등과 분열의 포화로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그러니까 ‘그 놈의 선거 좀 안했으면 좋겠다’는 말마저 나옵니다. 지역이 지역인지라 맹목적으로 특정 후보를 추종하기도 하고 특정 후보를 지나치게 미워하는 일도 흔하게 봅니다. 정치에 빠져들면 좋아하는 사람은 늘 좋게만 보이고, 싫어하는 사람은 뭘해도 싫게 보입니다. 그게 팬덤인데 그 사이에서 갈등과 분열이 싹 틉니다. 인물들의 수많은 정책은 휘발하고 후보자를 아우르는 이미지만 남게 되면 속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선출 권력이 주인이 아니라 우리가 주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평소엔 잊고 삽니다. 그 사실을 잠시라도 망각했을 때 정치가 우리의 삶을 쉽게 헝클어트려 버립니다. 그래서 투표는 끝이 아니라 시작인지 모릅니다. 4월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열흘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이 선거의 결과가 우리 지역에 미칠 영향은 실로 엄청날 겁니다. 양식있는 시민이고 유권자라면 절대 오만한 정치를 용서하면 안됩니다. 깜도 안되는 후보를 선택할 이유도 없습니다. 파렴치한 사람을 중형으로 다스리듯 거짓말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선거로 심판해 낙선이라는 선물 쥐여 돌려 세우는 관행을 세워야 마땅하지요.자 이제 어느 후보가 어떤 성적을 낼 지를 지켜보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의미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후보가 되든지 결과에 상관없이 우리 안에 공론을 모으는 작업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마을과 지역 사회에 산적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있게 일상적으로 토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들은 끊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으니까요. 그래서 아래로부터 길어 올려야 합니다. 지역에 특정 사업을 유치하는 것을 넘어서 농촌과 시내 지역이라는 특수성과 보편성을 아우르는 정책을 밑바닥에서부터 제안해야 합니다. 밑바닥에서부터 공론장을 끊임없이 가동해 우리 삶을 둘러싼 문제에 대하여 정확히 짚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당당하게 요구해야 합니다. 정치인들도 편가르기 정치를 할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말하는 공론장을 맴돌며 이를 귀담아 듣고 때론 같이 참여하고 해결하는 촉매 구실을 하기를 기대합니다. 지난 세월 숱한 정치인들이 선거때만 잠시 나타나 얼굴 내밀고 명함 돌리다 떨어지면 집으로 가고, 당선되면 중앙당과 최고 권력만 쳐다보는 일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그러는 동안 지역에는 번지르르한 거짓말을 두고 ‘내가 잘났니, 네가 못났니’ 같은 쩨쩨하고 볼썽사나운 갈등과 반목만 남습니다. 두번 말하면 입 아픈 이야기인데, 다시 두 눈 부릅뜨지 않으면 이같은 폐단은 반복되지 않으리란 법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왜 빨갛고 파랗고 하얀색 표의 뒤덮임 속에 우리 이웃을 비난해야 합니까. 알고보면 그들은 눈만 뜨면 만나는 우리의 친한 이웃일 뿐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우리가 만나야 할 이유입니다. 그들을 대상화해 변하지 않음을 악마화 하고 손가락질 할 때 우리 모두는 패배자가 되는 겁니다. 우리 안의 자력으로 끌어들여 모든 것 다 내려놓고 같이 얼굴 맞대며 생활의 일로, 혹은 지역의 사안으로 같이 마음 맞춰 의논할 때 우리의 삶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당선되는 후보의 공약을 지켜보고 또다른 제안을 할 수 있는 방법도 나옵니다. 우리는 어차피 2년 뒤에 또 지방선거를 맞습니다. 선거란 내 삶과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변할 수 있는 연장선상의 제도일 뿐입니다. 물론 선거 잘해야겠지만 우리는 삶의 문제를 되돌려 보고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자리가 필요합니다. 우리 눈높이가 높아지면 우리 삶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선거가 끝났다고 흩어질 게 아니라 머리 맞대고 우리의 미래에 대해 다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밝고 환한 얼굴로 마주보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