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 골때리다는 황당하다는 뜻이다. 뼈때리다는 동사는 없지만 ‘뼈를 때리다’는 관용어는 정곡을 찌른다는 뜻이다. 오늘 [글밥]은 뼈때리다의 잘못과 뼈를 때리다와의 혼돈을 피하면서도 적실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뼈 때리는 이야기’라고 썼다. 뼈와 때리다를 띄어쓴 것이다.실제 골을 때리면 어찌 될까? 죽는다. 실제 뼈를 때리면 어찌 될까? 고꾸라진다.무릎에는 뼈와 뼈 사이에 연골이 있다. 이 연골은 아래뼈 위쪽으로 오(ㅗ) 자 모양으로 돼 있다. 연골이 있어 무릎 위뼈와 아래뼈가 부드럽게 펴지고 굽혀진다. 물론 두 다리로 멀쩡하게 걷는 것도 이 연골의 도움 때문이다.그런데 한국 사람의 20%, 그러니까 10명 중에 2명은 태생적으로 기형적인 연골을 갖고 난다. 이 연골을 의학용어로는 반월상연골판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반월(半月)의 판으로 된 연골이란 뜻이다. 정상적인 반월상연골판은 가운데가 텅 비어 있다. 무릎 위뼈와 아래뼈의 원활한 운동 원리는 그 때문에 가능하다. 기형 반월상연골판은 가운데가 연골로 가득 차 있다. 이런 무릎은 무리한 운동을 하거나 심한 외부충격을 받으면 곧잘 파열된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정상 반월상연골판에 비해 일찍 닳고 상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 기형 반월상연골판이라도 정상인 것처럼 살아가기도 한다.아내가 두 달 전부터 왼쪽 무릎이 좋지 않다고 했다. 아이들 체육대회에 가서 부모 참여 게임을 한 뒤부터였다. 정형외과에 가서 X-ray를 찍었지만 이렇다 할 문제가 보이지 않았다.약을 받아와 먹었지만 호전이 없었다. 그렇게 유야무야 2달이 흘렀다. 큰 통증이 아닌 데다, 일상 중에 걸을 때 별 무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앉았다 설 때 간혹 통증을 호소했을 뿐이다.2달이 흘러도 호전이 없자, 다시 정형외과를 찾았다. 이번에는 명의라고 소문난 의사를 찾았다. MRI를 찍었다. 명의라는 그 의사는 반월상연골판이 파열됐고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당초 수술 예정일은 1월 3일이었다.수술예약을 한 날, 아내는 MRI 보험료 청구 때문에 하루 입원을 했다. 입원을 하면서 맘카페와 블로그에서 반월상연골판 수술에 대해 찾아봤고, 지인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아내는 그날 밤늦게 병원을 몇 군데 더 알아보고 수술을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나도 그게 좋겠다고 했다. 충남대학병원은 23일에 예약을 해두었다고 했다.이튿날 퇴원해서 MRI 파일과 진료소견서를 챙겨서 직장 동료(보건박사)가 추천한 병원 1곳을 포함해 3곳을 더 다녀왔다.놀라운 사실이 도출됐다.의사 A, B. C, D의 소견은 각기 조금씩 달랐다.예컨대 A는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B, C, D는 서두를 필요는 없는 수술이라고 했다. MRI 유효기간이 6개월이니 그전에 수술하면 된다고 했다.일단 네 의사는 모두 수술은 해야 한다고 봤다.또 A는 기형 부분을 도려내고 연골 안쪽 상태를 들여다본 뒤 필요하면 꿰매는 것까지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봉합술까지 하면 재활까지 2달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D는 아주 단순한 절개수술이라고만 했다.B, C는 반월상연골판이 태생적으로 기형인 사람은 정상인에 비해 기형이지만, 기형으로 산 사람에게는 기형이 곧 정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골을 정상으로 깎아 내면 오히려 그전보다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도 많다는 점을 고지시켜 주었다. 지금까지는 기형이어도 파열되지 않았기로 불편함을 모르고 살았지만, 절개해 정상 연골판으로 만들면 그게 더 불편할 수 있다는 뜻이다.블로그에서 찾은 의학 정보로는 반월상연골판이 한번 파열되면 회복이 쉽지 않은 까닭은 혈액순환이 되지 않는 곳에 자리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또 대학병원에 가면 더러 수술 대신 약물치료 등 대안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는 안내도 돼 있다.(계속) 아내와 나는 23일 대학병원 진료를 앞두고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고 있었다. 대학병원의 E 의사 역시 A와 함께 대전에서는 명의로 알려져 있다는 게 집사람의 전언이었다. 하지만 아내가 MRI를 찍고 진단을 받았던 의사 A는 인골관절 분야로 이름이 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또 아내 직장 동료인 보건박사는 반월상연골판 수술의 경우 수술 경험이 많은 의사 C한테 받는 게 좋다는 의견을 주었다. 덧붙여 서울에서 수술하는 것보다는 대전에서 하는 게 좋다는 의견도 주었다. 수술 후 재활이 필요할 경우 서울은 왕래와 시간 등 애로가 있기 때문이란 게 이유였다. 우리 부부는 의사 A, B, C, D와 보건박사의 소견과 의견 그리고 블로그 정보를 토대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수술은 해야 한다. -대전에서 하는 게 낫다. -무리한 운동을 삼가야 한다. 1월 3~4일 병원 4곳에서 진료를 본 뒤, 나는 아내에게 한 가지를 주문했다. 대학병원 진료까지 20일이 남았으니 그때까지 찜질을 해 볼 것을 권했다. 22일 밤, 아내에게 무릎 상태가 그전에 비해 어떻냐고 물었다. 그전보다는 통증이 줄었다고 했다. “왜 준 것 같아?” “될 수 있으면 안 써서 그렇지 않을까?” “걸으면 안 불편해?” “걷는 데는 이상이 없고, 앉았다 일어서거나 쪼그려 앉는 건 힘들어.” “수술을 하면 언제 할 건데?” “라온이 입학 전에 하면 좋을 것 같아.” “왜?” “그래야 회복해서 애를 봐주지.” “수술은 어디서 하게?” “대학병원에서.” “지난번 보건박사가 S병원 C의사가 경험이 많다고 그 병원을 추천해 주지 않았나? 거기가 집도 가깝고.” “그런데 내가 체질적으로 마취가 잘 안 되잖아. 그 얘기를 하니까 보건박사도 그러면 대학병원에서 수술하는 게 맞다고 하더라고. 마취는 아주 중요하니까.” 그렇게 대학병원 E 의사를 만났다. 의사 E는 우리가 가져온 MRI를 컴퓨터에 띄워서는 제일 먼저 아내의 나이를 확인했다. “음, 마흔네 살.” 그리고 몇 가지 문진을 했다. 그러다니 의사 E는 이렇게 뚝 내뱉었다. “이대로 둡시다.” “무슨 말씀이신지. 수술을 안 해도 된다는 말씀이세요?” “네. 여기서 손을 대면 연골 이식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어요. 아직 나이가 젊고 고통의 정도가 그리 심하지 않으니 그냥 두고 봅시다.” “다른 의사 소견들은…” “소견들은? 도대체 몇 군데나 다녀보고 온 거예요?” “네 군데요.” “모두 수술을 해야 한다던가요.” “네. 약간씩 소견은 달랐지만 결국 수술은 해야 한다고 했어요.” “허참.” “그 분들은 왜 그러셨을까요?” “대학 때 공부를 제대로 안 해서 그렇죠.” “…….” “자 봅시다. MRI를 보면 정상적인 연골은 검죠? 그런데 본인 연골은 이렇게 회색인 데다 기형이에요. 이런 걸 반월상연골판이라고 하는 거예요. 육안으로 봐도 물러져 있는데, 다행히 내시경으로 봐서 바깥 부분이 생각보다 멀쩡해서 그 부분만 도려낸다고 해도 안쪽이 멀쩡하다는 보장이 없어요. 내가 신(神)도 아니고 그걸 보지 않고 알 수는 없어요. 또 막상 내시경으로 들여다보니 예상대로 연골 바깥 부분부터 물러져서 깎아 들어가면 연골판 전체를 들어내고 이식해야 하는 상황까지 갈 수 있어요. 이런 경우는 그냥 견뎌보는 게 좋습니다. 수술도 의사도 보람을 느끼고 환자도 만족해야 좋은 거지, 이런 수술은 환자가 상처를 입을 수 있어요. 본인 같은 연골은 우리나라 국민 중 20% 정도고, 태생적으로 기형이라 본인한테는 이게 정상인 겁니다. 이 연골이 찢어져서 뼈와 어긋나게 된 것인데, MRI로 봐도 지금 많이 물러져 있어요. 정상적인 연골판은 검고 딱딱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좀 불편해도 생활하다 보면 또 통증을 잊고 그냥 지내는 분도 많아요. 지금 상황에서 뼈와 연골이 삐걱대다 자연스럽게 맞기도 하거든요. 약을 3개월분 지어줄 테니 그거 먹고 1년 뒤에 MRI를 다시 찍어 봅시다.” 약국 가는 길, 아내 얼굴에는 혹한에도 기어이 붉은 잎 다섯 장을 피어내는 동백꽃 같은 붉은 웃음이 가득했다. 약은 관절영양제 90일분과 통증이 심할 때만 먹으라는 진통제 45일분이었다. 약만 검은봉지에 한가득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난 3일 K병원 의사 A에게 잡았던 수술을 예정대로 했더라면 아내는 반월상연골판 때문에 평생 절뚝거리는 신세를 면치 못했었을 수도 있다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했다. 더불어 과학 우월주의, 일상주의에 빠져 의사 말이면 곧이곧대로 믿는 풍조 역시 미신(迷信)에 불과하다는 점을 새삼 확인했다. 최근 모 치과의사는 우리나라 치과병원들이 환자를 상대로 돈을 벌 목적으로 과잉진료를 한다고 그 실상을 폭로한 책을 펴냈다. 예컨대 멀쩡한 이를 뽑고 임플란트를 권하는 게 대표적이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는 금언이 있다. 우리 건강은 건강하게 태어난 몸 자체를 유지·관리하는 게 으뜸이다. 허리디스크, 목디스크, 무릎관절 등은 모두 우리 몸을 지탱하는 뼈와 직결돼 있다. 뼈가 무너지면 몸이 무너진다. 골을 때리면 사람이 죽지만, 뼈를 때리면 사람이 자빠진다. 이래나저래나 골로 가는 첩경이다. 건강할 때 몸을 잘 지키자./심보통 2024.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