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군 봉화읍 유곡1리에 자리 잡고 있는 닭실마을은 봉화지역의 대표적인 집성촌으로 원래는 파평윤씨의 터전이었으나 안동권씨 가운데 충재 권벌(1478-1548)이 입향하여 세거지를 형성한 일족의 마을이다. 권벌은 조선 중종 때 문신으로 한성판윤을 거쳐 의정부 우찬성을 지낸 학자로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이곳에 정착하여 후진을 양성하고 경학을 연구하며 터전을 닦았다. 그가 정착할 당시 이 마을 자제들과 인근지역 선비들의 학문수양 장소로 건립된 청암정과 그의 맏아들 권동보가 아버지를 그리며 세운 석천정사는 함께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권벌은 몇 년 후 관직에 복직되었으나 을사사화로 또 다시 파직되어 평안도 삭주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생을 마감했다. 그런 후 세월이 지나 선조 때 그의 억울함이 밝혀져 충정이란 시호를 받았고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불천위제사의 특권을 누린다. 충재는 영의정에 추증될 정도의 최고위 관료였고 진정한 선비로서도 추앙을 받은 인물이다. 이 마을은 풍수형국으로 보아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국의 명당길지로 이름난 곳이다. 마을의 동쪽에 있는 옥적봉은 수탉, 서쪽의 백운령은 암탉을 닮았으며 수탉은 날개를 치며 우는 모습과 같고 암탉은 알을 품고 있는 형국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마을의 중심점이라 할 수 있는 장소 곧 금닭이 품고 있는 알에 해당하는 곳에 충재 종가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이 마을은 조선중기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도 경주의 양동마을과 안동의 하회마을, 내앞마을과 더불어 영남의 4대 길지로 칭송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풍수적 길지에 자리한 안동권씨 복야공파의 한 갈래인 닭실권씨들은 문장과 명필이 끊이지 않았으며 문과 12명, 생원진사 59명, 참판 2명, 수령방백 12명, 의병장 3명을 내고 문집과 유고를 남긴 사람이 88명에 이른다. 근대에 와서도 차관 2명과 국회의원 2명을 포함한 많은 인사들이 정⋅관⋅재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마을은 전국에서 이름난 명승지로 많은 관광객과 더불어 청암정을 배경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이 마을의 주산은 문수산(1272m)으로 태백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지맥이 마을 뒤편으로 내려와 문수산을 일으키고 여기서 다시 남서방으로 내려와 마을의 배산인 현무봉을 일으켰다. 현무봉은 그 모양이 둥그스름한 금(金)형의 부(富)봉으로 나란히 3봉우리가 있으니 마을에 부를 가져다주기에 충분하다. 문수산에서 좌측으로 뻗어 내린 청룡자락은 옥적봉을 거쳐 완전히 마을을 감싸면서 앞쪽 정면까지 뻗어 와 이 마을의 안산이 되었다. 안산(남산)은 그 모양이 양측에 첨각이 붙은 고축사(誥軸砂)로 이러한 사(砂)가 혈장주변에 있으면 정승이 출(出)한다는 귀한 산이다. 우측의 백호자락(백운령)은 내성천을 감싸고 마을 앞까지 뻗어와 안산 뒤편의 조산이 되었으며 청룡과 백호가 맞물려 깍지를 끼듯 관쇄를 해주니 수구가 좁아 마을의 생기를 잘 보전시켜준다. 이 마을은 배산임수(背山臨水)와 전저후고(前低後高), 전착후관(前窄後寬)이란 양택3요결을 모두 갖춘 양택길지로 입구에 들어서면 누구나 아늑하고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