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리(孝子里)는 고을의 북쪽 20리 우항(愚巷)마을에 있으니 포은(圃隱)선 생을 표창하는 문(旌閭)을 세운 땅으로 홍무(洪武)203) 기사년(己巳年)204)에 군 수인 정유(鄭有)205)가 그 터를 표시하여 ‘효자리’라 하였다. 세월이 오래되어 무 너져 〔비신이〕 누웠었는데 성화(成 化)206) 정미년(丁未年)207)에 손순효(孫舜 孝)208)가 안절사(按節使)209)가 되어〔이 곳을〕지나다가 꿈에 포은선생이 나타 나기에 마을의 노인에게 물어 전답 가 운데서 비석을 찾아 다시 세우고〔건물 등으로 비신을〕 가리었다.(원문) 孝子里 在郡北二十里愚巷 村 圃隱先生旌閭之地 洪武己巳 郡守鄭有表其墟曰孝子里 年久頹仆 成 化丁未 孫舜孝按節過夢顯圃隱 詢里 老得碑於田畝中 復立而庇之도일동(道一洞)은 고을의 북쪽 20리 임고서원 가운데 있으며, 포은선생께 서 〔부친의 묘소에〕 여막을 짓고 살 던 곳으로 일성군(日城君)210)의 묘소가 있다.(원문) 道一洞 在郡北二十里臨皐 書院中 圃隱居廬之地 日城君墓在焉 환귀리(還歸里)는 고을의 북쪽 20리 에 있으니, 민속에 전하기를 봉황새가 마을의 오동나무에 집을 짓고는 고을의 남쪽 죽림에서 대나무의 열매를 구해 돌아와서 마을 뒤쪽 언덕에서 쉬었다 하여 〔환귀리(還歸里)라고〕 이름을 지었다. 예전에는 절집이 있었지만 지금 은 없어졌다.매산(梅山) 정중기(鄭重器 1685~ 1757)211)의 시(詩)에 읊기를,“후손 없는 운손(雲孫)212)들이 서로 보 내고 맞는데평평한 들판 10리에 개울이 하나 가 로놓였네자양의 현속(縣屬)213)은 상서로움을 전하고 절집은 이름이 있네평설(坪楔)은 아직도 양효자(楊孝子) 를 알고거리의 비 석은 모두 정선생을 우 러런다 한 구역의 문장과 행실 (문행文行) 은 지금도 오히려 성한데300년래에 몇 번을 꽃 피웠나” 라 하였다.(원문) 還歸里 在郡北二十里 俗傳 鳳鳥 巢於梧坊 採竹實於郡南竹林而 歸 休于此後岡 故名焉 古有寺 今廢 梅山鄭重器詩 毋裔雲孫互送迎 平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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