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포켓(25)모하비 4륜구동에 대한 잠복에 들어갔다. 띄엄띄엄 볼 수 있다는 것에 착안하여,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차량이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렇다면 내가 찾고자하는 차량은 인구 십만의 도시에서 거의 범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작업실에 가지 않는 시간은 거의 놀이터를 빠져나가는 길목을 기점으로, 매의 눈으로 훑기 시작했다. 가끔 탐정놀이를 하는 것처럼 표정까지도 변해가고 있었다. 서화인에겐 작업실 일감이 많아졌다는 것으로 둘러대었다. 그렇다고 범인을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한다는 방법은 애초에 없었다. 단지 백주대낮에 살인자가 돌아다닌다는 것은 양심상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날도 큰길 쪽에 서서 들어오는 차와 나가는 차를 열심히 체크하고 있었다. 감사해야 할 것은 이런 마음을 먹은 시기였다. 오월로 넘어가는 적당한 날씨기에 망정이지, 한 겨울에 이런 마음으로 덤벼들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득했다. 허긴 내 성격에 물불가리지 않고 덤벼들었을 게다. 무 대포적인 탱크기질도 다분히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멀리 차한대가 시내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물론 수 십대의 차가 들어왔지만 오직 모하비만 시각적 선에서 줌으로 끌어당겼다. 헐레벌떡 놀이터를 가로질러 지름길로 시내에 먼저 들어섰다. 세븐일레븐 편의점 앞에 차를 세운 운전자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기회다. 일행은 없었지만 젊은 운전자를 보면서 육십 프로 확률에 근접한 확신이 느껴졌다. 안으로 들어간 나는 주변의 경계를 늦추지 않고 운전자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사고당일 어둠속에서 보았지만 덩치도 비슷한 것 같았다.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는 처지이기에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운전자가 뜨거운 물을 부운 컵라면을 들고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다가 화장실이 생각났는지 핸드폰을 컵라면 곁에 두고 고맙게도 사라졌다. 하늘이 준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빛의 속도로 다가가 운전자의 핸드폰을 열었다. 다행히 잠금장치는 되어있지 않아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내 번호를 눌러, 운전자 번호를 알 수 있게 한 다음 누른 흔적을 삭제하고 재빨리 원위치에 두었다. 운전자가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온 시간과 내가 핸드폰을 탁자에 놓는 시간은 거의 일치했다. 다만 화장실에서 나올 때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가에 따라 현장이 발각되고, 안 발각되는 상황이 그려지는 것이었다. 들켰다는 생각은 의외로 편의점 알바생의 표정에 읽혀질 뻔 했다. 힐끗, 이쪽을 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아서 알바생의 눈치를 살폈다. 운전자가 앉아 컵라면 면치기에 핸드폰에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하는 모습에서, 스스로 잡음을 만들어낼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제 할 일에 몰두해 버렸다.간신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운전자도 얼마 있지 않아 밖으로 나와서 편의점 앞에 차를 세워둔 채 길 건너 식자재마트로 향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더 건질 것이 있을까 해서 마트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운전자는 카트기를 앞세워 이것저것 담기 시작했다. 진열대 뒤에 몸을 숨기면서 하나라도 놓칠세라 운전자의 몸짓과 어투에 매달렸다. 혹시 작은 정보라도 입력이 되어있으면 우위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믿었다. 그렇게 운전자를 놓아주고 긴장했던 어깨를 내려놓자 축 처져 살아왔던 한 때의 은둔형 외톨이로 돌아온 듯했다. 더욱 어깨도 폈고, 더욱 잠긴 목청도 힘껏 소리쳤다.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돌아가고 싶지 않는 시절이 있을 것이다. 굴욕적이고 참담하고 울화가 치밀어서 잠도 오지 않는 서러운 날을 떼버리고 싶은 기억저편이 스물스물 살아났다. 빠져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물귀신처럼 따라다니고 있었다니, 차라리 헛웃음이 나왔다. 서화인의 초인종을 빠르고 굳세게 눌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