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포켓(26)서화인의 문이 열렸다. 예고 문자도 없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고르고 있는 나를 보면서 서화인은 깜짝 놀란 표정을 먼저 지어보였다. 곧 반가운 표정으로 내 엉덩이를 가볍게 툭툭 쳐서 안으로 끌어들였다. “뛰어왔는가 보네. 땀 닦아요. 설마 내 매력에 풍덩 빠져 어제 한걸 깜빡하셨나요? 아님 진짜 배가 고파, 한 끼 줍쇼 인가요?조금 진지해질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서화인을 소파에 앉히고 나는 바닥에 앉아 오초정도 뜸을 들였다. “털어놔 봐요. 작업실에서 짤려 도로 실업자가 되었다는 뭐 그런 소리 맞나요?”“어떻게 하면 당신에게 충격을 덜어내고 싶은 마음으로 망설였지만, 어차피 부딪혀야 할 거라면 있는 그대로 털어놓을게요.”심각성을 표정에서 읽었는지 서화인의 얼굴이 굳어졌다.“이혼조정신청을 한 남편이 얼마 있다가 행방불명이 되었죠? 내가 행방불명된 남편을 목격한, 유일한 목격자라는 사실을 지금에야 털어놓을게요.”무슨 소리냐는 서화인의 몸짓이 소파에서 앞으로 쏠려, 바닥에 나란히 무릎이 닿도록 앉아 그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두 달 전 퇴근 무렵 놀이터에서 남편을 만났어요. 나를 기다린 그의 행동에서 이미 우리의 관계를 파악한 상태였어요. 칼을 들고 덤벼들기에 그 자리도 피할 겸, 큰길 쪽으로 달아났어요. 당신에게 어떤 해코지를 할지 몰라서 반대 방향으로 무작정 달아난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남편은 술을 마셨는지 스텝이 꼬였지만 끝까지 따라왔어요. 큰길에서 사건은 터졌어요. 한가한 도로 탓에, 나는 인도를 타고 뛰었지만 남편은 도로를 가로지르며 따라오다가 음주운전 차에 부딪히고 말았어요. 음주운전 차라고 추정되는 갈지자 주행이 충분히 입증하고 있었어요. 모하비 4륜구동차가 남편을 들이받고 동승자와 함께 내려 뒷좌석에 싣고 사라져 버렸어요.”“그래서 이 인간, 소식이 없었구나. 그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요?”“비겁하게도 인도 풀 섶에 숨어 있었어요.”그늘 진 얼굴로 서화인은 잠시 침묵에 들어갔다. 그에 맞게 몇 초간의 침묵을 맞춰주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두려웠고 무서웠어요. 그렇지만 대신 남편을 제거해주는 그들이 한편으로는 고마웠어요. 남편의 간섭과 억압에서 자유로워지는 당신의 밝은 모습을 간절히 원했거든요. 나 한사람 입만 닫으면 우리의 행복도 보장되니까요.”“그런데 왜 털어놓죠?”“남편이 없는 우리의 행복이 보장되는 건 사실이지만, 양심의 가책으로 알게 모르게 가위에 눌리곤 했어요. 그런데 오늘 거의 범인이라고 확신이 드는 모하비 운전자의 전화번호를 우연찮게 따냈어요. 당신도 언제 남편이 나타날지 모르는 조바심으로 불안에 떨 필요가 없다고 전해주고 싶었어요. 남편을 제거해준 고마움은 고마움이고 그에 합당한 죗값을 물어야한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어떤 방법을 쓸지 한사람의 머리보다 두 사람의 머리가 성공 확률을 높이는데 최선일 것 같기도 하고요. 그리고 비겁하게 숨어 있었던 나를 변명하고 싶진 않아요. 당신의 그 어떤 비난이라도 달게 받을 각오가 되어있어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