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음력 4월8일 ‘부처님오신날’이다. 역사적인 인물 ‘고오타마 붓다’ 즉, 석가모니의 탄생일을 기리는 날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불자들에게 대명사다. 시작이 없는 때로부터 수많은 세상에서 존재해 온 깨달으신 분, 그 깨달음을 중생들에게 전하여 苦(고)로부터 해방되는 길을 열어 보이시는 분이다. 지금 세상은 참으로 ‘붓다’의 출현이 필요한 세상이다. 봉축(奉祝)! 남석구자는 응서이고 본관은 영양, 성재 천주의 후예이다. 서기 1875년 을해에 경상도의 청송에서 태어났다. 배움도 없고 예의도 없어 접여(接與)1)가 배척할 만한 인물이었다. 급기야 천하가 크게 어지러움에 이르자 일체 생계를 위한 활동을 하지 않고 탄식하며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죽도록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느니만 못하다.”라고 하자 이러한 남석구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진승(陳勝)2)에 비유하면서 비웃었다. 그러던 남석구가 산남의진이 봉기했다는 소식을 듣고 몸소 산남의진에 종군하여 소모(召募)의 임무에 자천하였다. 서기 1907년 정미 1년간에 대장 부자가 순절하자 이후에는 다시 그와 같은 사람이 없음을 탄식하고 고향마을로 돌아와 고을사람들을 격동시켜 의병 수백 명을 모집하였다. 마침내 스스로 지휘가 되어 여러 고을을 돌아다니며 자못 전과를 올렸지만 운수가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적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적들이 남석구를 여러 날 끌고 다니면서 각 지역을 순회하면서 남은 무리를 수색하였으나, 남석구는 자신의 부하를 곳곳마다 모두 감추고 서기 1911년 신해 (음력)9월 7일, 자기 혼자 죽음으로 나아갔다. 이에 세상 사람들은 그의 의롭고 늠름한 기개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원문〉 南錫球는 字應瑞요 英陽人이라 誠齋天柱之后라 乙亥에 生于慶尙道靑松하다 不學無禮하야 爲接與之排斥이라 及天下大亂에 不事産業하고 嘆曰人生此世하야 死而無名이면 寧愈無生이라 하니 見者譬笑於陳勝이러라 聞山南之義擧하고 身往從之하야 以召募之任으로 自薦하고 丁未一年之間에 大將父子殉節하니 歎後無其人하고 歸鄕里하야 激動於鄕黨하야 募衆數百人하야 遂自領指揮하고 轉戰列邑에 頗有所獲이런이 至運無可奈何之境하야 被執於敵하야 敵이 累日引致하고 巡廻各地하야 搜索餘黨이나 其部下을 處處皆隱諱하고 身獨就死하니 時辛亥九月初七日이라 世歎其義氣之凜凜이러라 <山南倡義誌 卷下41p>南錫球 義士 略歷(남석구 의사 약력)南錫球(남석구)는 字(자)는 應瑞(응서)이요 貫鄕(관향)은 英陽(영양)이라. 山南義陣(산남의진)에 入陣(입진)하여 혈심사력으로 활약하더니 丁未一年之內(정미일년지내)에 大將父子(대장부자) 殉節(순절)하니 뒤에 가감할 사람이 없는 것을 탄식하고 고향에 돌아와서 향당과 종족을 격동시켜서 공이 통솔하고 청송서부지역을 담당하여 철령에 웅거하고 적을 대항하다가 종말에 피검되어 부하인원을 전부 은휘시키고 단독으로 순절하다. <山南義陣遺史459~460p>공훈전자사료관 공훈록경상북도 청송 사람으로 산남의진의 장령(將領)으로 활동했다. 1907년에 고종황제가 강제 퇴위되고 군대까지 해산당하자 정환직의 산남의진에 합류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정환직이 경북 영천에서 사망하자 정순기(鄭純基)‧이세기(李世紀)의 진영으로 의병들이 모였다. 이들은 1908년 3월 경상북도 흥해(興海)의 최세한(崔世翰)을 대장으로 초청하고 보현산 거동사(巨洞寺)에서 산남의진을 재편성했다. 여기에 남석구도 합류하였다. 재편된 산남의진은 기계(杞溪)‧달성(達城)‧경산(慶山)에서 일본군을 격파하고 의성으로 진격했으나 패배하였다. 이후 소부대로 나뉘어 유격전을 전개했다. 남석구도 서종락(徐鍾洛)과 함께 청송(靑松)에서 유격전을 펼치며 항전하다가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1911년 음력 9월 7일에 순국하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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