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동부신문이 창간한 지 만 21년을 맞았습니다. 21년이라는 튼튼한 나무로 크게 해주신 애독자와 시민, 출향인들게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이 신문에는 어떤 피가 흐르고 있을까요. 피를 언급하니, 독자님들이 섬뜩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네요. 그게 아니고 여기서 말하는 피는 DNA를 말합니다. 더 쉽게 말하면 ‘색깔’, ‘차별성’, 어떤 ‘향기’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다움’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경북동부신문다움...“요즘 시대에 누가 종이 신문 보냐”며 쓴소리 하지만 그것조차 애정과 관심으로 비판해 주는 솔직한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독자의 권익에 충실하고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견제와 감시를 통해 균형추 역할을, 지역사회의 건강성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잘 실천이 안되다 보니 창간을 맞아서도 마냥 축하받고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이런 입장 견지는 말도 안되는 논리인데다 구조상 가능성 역시 희박한 전제가 되고 맙니다. 그 이유는 신문의 이중적인 성격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 공기로서 공익을 추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익을 추구하는 회사이기 때문인데요. 이익만을 추구하면 저널리즘의 본령에 어긋날테고, 거꾸로 무턱대고 저널리즘에만 집중하면 굶어죽기 딱 맞는, 더 심하게 말하면 망하는 구조라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 신문도 이런 양가치 척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고민 끝에 이런 결론에 도달해 봅니다. 남한테 크게 손벌리지 않고 올곧게 정론을 추구하자고. 이를 위해 일당백의 용기와 배수진의 분투로,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최소한의 인력으로 회사를 운영하면 된다고. 이런 생각이 정말 위험한 ‘양날을 칼’임을 시간이 갈수록 절실히 느낍니다. 신문의 품질이 올라가야 브랜드 가치도 상승할텐데 날마다 역행한다는 느낌만 받습니다. 세상은 물론 언론 환경도 엄청난 속도로 변했습니다. 이 변화의 속도가 얼마나 가공할 정도의 위력인지 직감하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지금은 종이신문보다 SNS를 통해 정보를 접하고 또 서로 전하는 시대입니다. 미디어 기능이 발달해 많은 정보가 든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넘쳐납니다. 그럴때마다 흐트러졌던 마음을 다잡지만 ‘정론직필’의 열정은 식고 다시 불을 붙이는 일이 쉽지 않네요. 그럼에도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미국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나 “비판 언론이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다”(칼 마르크스)라는 명언은 저널리즘의 영역에서 자주 회자되는 말입니다. 경북동부신문 역시 독자들에게 약속한 모토는 정직한 목격자가 되는 것이고, 이런 지향점에 따라 시민의 알권리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물론 일부에서는 “진실하고 정의로워야 하는데 감시 기능은 떨어지고 무슨 홍보지 같이 색깔이 없다”라고 혹평합니다. 맞습니다. 언론의 정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오늘은 어떤 뉴스가 나왔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신문, 품격 있고, 속에 영혼이 꿈틀대고, 이 매체만의 문체가 살아 숨쉬는 신문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저널리즘의 생명은 사회의 소금 역할을 하고, 불의를 지키는 감시견 역할입니다. 정체가 알쏭달쏭하거나 특정 당파의 나팔수 노릇하는 것은 우리 신문의 DNA와 한참 거리가 멀지요. 그것은 곧 독자들의 외면으로 돌아올 것임을 압니다. 언론은 뭐니뭐니해도 공익을 지키는 첨병이 돼야 합니다. 가성비를 너머 가심비(만족도)도 좋은 신문이 될 것을 약속합니다. 신문 구성원과 독자가 한쪽씩 다리를 묶고 함께 뛰는 이인삼각 경기를 한다는 생각으로 지역의 정론지로 다시 나길 기대해 봅니다. 창간 21주년은 늘 깨어있는 우리의 독자와 함께 일궈낸 것입니다. 그동안 한눈 팔지 않고 불편부당의 정신력으로 매진할 수 있도록 아낌 없이 격려를 보내준 독자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