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울산, 대구 등지에서 여섯 가구, 여덟 분의 도시민이 농촌현장체험을 위해 자양면 보현2리에서 5,6월 두 달간 살고 있다. 5,6십대 장년층인 이들은 향후 농촌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어하는 예비 귀농귀촌인이다. 그 꿈을 사전에 경험하여 실패확률을 줄이기 위해 정부에서 마련한  이 프로그램은 ‘농촌살아보기’이다. 오늘은 자양면과 임고면 일대를 돌아볼 생각이다. 마침 자양면장님이 시간을 할애하여 면담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환영의 의미가 더해질 참이다. 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도시민의 농촌으로의 분산을 지향하는 귀농귀촌은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애국운동이다. 산남의진의 땅에 이 시대에 필요한 애국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열여덟 가구가 체류하는 가운데 1년간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영천시체류형농업창업지원센터 또한 그 역할을 충실히 실행해나갈 것임을 믿는다. 우려보다는 응원과 지원이 필요한 일이다.조상환①자는 석보, 본관은 창녕이며, 자계 용한1)의 6세손으로 서기 1866년인 고종조 병인에 태어났다. 평소부터 담력이 좋으며 지략이 있었고, 신체의 힘이 보통사람보다 빼어났으며 또 총 쏘기를 좋아했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들어옴에 울분을 참지 못하였다. 생계를 위한 활동은 하지 않고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때를 당하여 나라의 위급함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백성된 도리가 아니다”라 하고 곧바로 산남의진으로 들어와 처음에는 1초장이 되었다. 그 후 도포장이 되어 여러 고을로 진격하였으며 싸움에는 반드시 선두에 올라 죽음의 땅을 피하지 않았다. 서기 1907년 정미 1년 안에 대장 부자가 모두 순절하니 대장 부자를 위한 복수를 하겠다고 하늘에 맹세하고 이세기 등과 더불어 한편으로는 의병을 모집하고 한편으로는 싸우면서 각 지역을 경영하였다. 그러던 중 불행히도 적에게 붙잡혀 청송에서 시작하여 안동과 의성을 지나 군위에 이르러서도 끝내 항복하지 아니하다가 화장실에 간다고 속이고 일본군 보초병을 발로 차서 거꾸러뜨리고 탈출하여 달아나다 적들이 추격하면서 쏜 총탄에 맞아 효령(孝令) 뒷산에서 순절하였다. 그때가 서기 1908년 무신 (음력)2월 23일이었다. 그의 아들 규봉이 시신을 넣은 관을 싣고 돌아와 기룡산의 선영 아래 장례하였다.〈원문〉 曺相煥은 字石甫요 昌寧人이요 慈溪龍翰之六世孫也라 高宗丙寅生이라 素有膽略하고 膂力過人하고 又好炮射하다 自倭之入國으로 不勝憤鬱之氣하야 不事産業하고 謂同志曰當此之時하야 不顧國家之危急이며 非爲民之道理라하고 卽入山南義陣하야 初爲一哨將하고 後爲都炮將하야 進戰列邑에 必先登之하야 不避死地하다 丁未一年之內大將父子皆殉節하니 誓天復讐하고 與李世紀等으로 且募且戰하야 經營各地라가 不幸被執하야 自靑松으로 歷安東義城至軍威하야 終始不服하고 詐稱如厠而蹴倒播守之倭하고 逃脫이라가 敵追後亂射하야 殉死於孝令市後山하니 戊申二月二十三日也라 其子奎奉이 輿櫬而歸하야 葬於騎龍山先壟하다 <山南倡義誌 卷下41~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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