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우 마흔 고비에 오르기 전 서른아홉 어느 날 문득 ‘이제야 독서가 된다’고 느꼈고, 마흔여섯에 들어선 올해 어느 새벽 돌연 ‘글귀가 머리 아닌 가슴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독서를 할 만하다 싶었을 때 그 바탕은 비단 글공부 때문은 아니었고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남달리 쌓을 수 있었던 ‘인간(세상) 탐사’ 덕분이었다. 그러니까 내 독서력은 흔히들 이야기하는 다독(多讀) 때문이 아니라 인간 탐사라는 경험치 때문에 자리잡은 것이다. 인간 이해 없는 독서는 ‘쇠귀에 경 읽기’의 장막을 결단코 넘어설 수 없다는 게 내 판단이다. 집안이나 도서관에 틀어박혀 내내 책만 읽으면 ‘먹물’이 되어 융통성이 없고, 저잣거리 경험에만 의지해 살면 이문에 눈이 멀어 깊이가 없고 자칫 천박해질 수 있다. 잘못된 상식 중 하나는 ‘나이가 들면 꼰대가 된다’는 것인데, 꾸준히 읽는 사람은 꼰대가 될 수 없다. 서푼짜리 경험칙을 신봉하는 자야말로 일찍 꼰대 되기 십상이다. 때문에 경험과 읽기의 중용(中庸)은 인생노정의 필수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사람을 통해 생기(生氣)를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는 내 진단은 적확하다.(2024. 2. 1일자 [글밥] <생기(生氣)> 참고) 내가 내 보이차 스승 양보석 선생님과 함께할 때 가장 세고 좋은 생기를 얻는다는 뜻은 이 분은 세상을 달관(達觀)했기 때문이다. 세상을 달관했다는 것은 젊은 시절에는 강력계 형사로, 마흔 중반 이후에는 경무계 관리자로 쌓은 전무후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유불선(儒佛仙) 그리고 기공, 신비주의 등의 서적에 취미를 갖고 밑줄 긋고 메모해가며 꾸준히 읽는 중에 보이차, 자사, 도자기 등을 과학자처럼 실험했고 지금도 실험하고 있다는 뜻이다. 양보석 선생님을 만나면 대구 돌아가는 이야기, 대구의 이 사람과 저 사람 이야기, 대구의 이 일과 저 일의 이야기는 물론 세상 사람과 세상 일의 겉 너머 속까지 두루 들어볼 수 있다. 배울 게 많다. 여기다가 선생님의 탁견(卓見)으로 특유의 비유법을 사용해 한줄 요약까지 해준다. 비유와 은유를 즐겨 쓰는 건 예수와 비슷하다. 고 이어령 선생 같은 분도 비유와 은유의 달인이었다. 선생님과 함께하기를 좋아하는 내가 지난해 빗장을 지르고 마흔에 지진부진했던 ‘1년 책읽기’를 속개했던 것은 한편으로는 선생님과 보폭을 맞추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선생님도 34년간 몸담았던 공직에서 물러나 숙원이던 다관(茶館)을 열고 지난해 일절 바깥출입을 끊으셨다. 오는 사람 반기고 가는 사람 마다않는 일상 속에 선생님은 또 한 번 인간들 검은 속을 들여다봤다고 했다. 선생님이 인간들 겉과 다른 속을 들여다볼 때 나는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는 채 글짓기를 중단하고 책읽기에 몰두했다. 그렇게 읽은 책이 딱 50권이었다. 당초 100권 목표를 세웠지만 가정사가 이첨저첨 얽혀 8개월간 50권을 읽고 독서가 중단됐다. 올 3월 31일 꼭 1년이 되니까 그때까지 바지런을 떨어도 70권 안쪽이 될 것이다. 나는 생각을 바꿔먹었다. 그 단초가 지난달 어느 새벽 마음으로 글귀가 박혀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건 일종의 문리(文理)가 또 한 번 터진 셈이고, 글공부의 개벽(開闢)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해서 지금과 같은 수련기간을 나이 50이 될 때까지 고수해 볼 참이다. 1년간 독파하는 권수는 좀 줄어도 기간을 늘림으로써 심적 여유는 되레 늘었다. 이것이 마흔여섯 내 가슴이 시킨 일이다. 이 결심이 선 날은 2024년 1월 22일이었고 나는 속필(速筆)로 메모장에 써내려갔다. (계속)결국 건강한 삶이란 한걸음씩 나아진다는 것 아닐까 싶었다. 내로하는 사상가를 여럿 두어 ‘스승 위의 스승’으로 불리는 다석 류영모 선생은 나이 열일곱에 득(得) 자를 파자(破字)해 이렇게 풀었다. “매일(日) 한 자씩(寸) 나아가는(行) 게 곧 얻는 것이다. 이루는 것이다.” ‘황진이 스캔들’로 잘 알려진 화담 서경덕은 소년시절 어린 새가 날마다 조금씩 더 높이 날아오르는 걸 보고 ‘배움이란 저래야 하는구나’라고 무릎을 쳤다. 고전 속 고사 ‘조삭비(鳥數飛)’가 우리에게 친숙한 것은 서경덕 선생의 이 일화 덕분이다. 나는 서른하나 10개월간 극심한 우울증을 앓으며 고향집 ‘봄전령’ 노루귀를 보고 ‘생명이란 저래야 하는구나. 자기 힘으로 서야 하는구나’를 깨달았다. 작디작은 노루귀가 여리디여린 꽃대를 곧추세웠다가 강추위가 들면 얼어죽고 날이 풀리면 재차 세차게 새 꽃망울을 틔워내 기어이 꽃을 피우는 걸 지켜보면서다. 그 작지만 어느 생명보다 다부진 노루귀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황계서실(黃溪書室) 봄전령을 자처하고 있다. 서른한 살 때 이 각성(覺醒)을 나는 영성(靈性)이라 느낀다. 마흔여섯 시작된 가슴으로 느끼는 독서를 나는 또 한 번의 영성이라 느낀다. 내 짧은 생애 두 번의 문리가 터졌음을 나는 느낀다. 이른 아침 찻물을 우리고 책을 읽던 중에 나는 ‘내공(內功)’의 실상도 느낄 수 있었다. ‘20~30대는 기운을 밖으로 뿜어대며 수련하지만(=인간 경험), 40대부터는 기운을 안으로 모아 단련해야(=자기 공부) 단단한 내공을 갖겠구나.’ 나이 마흔이 넘어서면 말을 많이 해도 기가 쇠하지만, 쓸데없이 말 많은 사람을 보기만 해도 기가 빨리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모두 양기(陽氣)가 샌 경우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미사여구를 생략하고 할 말만 간명하게 해야 한다. 그러는 게 건강의 첩경이고 어른의 자격이다. 자기 공부는 이런 까닭으로 필요하다. 단 후학이 묻는 말에는 자상하게 재미있게 들려주어야 한다. 이 또한 건강과 어른의 자격이다. 나는 지난해 8개월 두문불출 단련으로 이제 읽는 중에 짓기도 능히 가능해졌다. 이제 가슴이 하는 말을 따라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할 차례다. /심보통 202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