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포켓(28)무엇보다 공포의 대상이었던 남편의 행방을 알게 되어, 서화인은 한시름을 덜은 표정으로 변해갔다. 그럴 줄 알았으면 일찍 털어놓았어야 했나 하는 짧은 후회도 있었지만 세상사는 타이밍이라는 적절한 결론에 다다랐다. 타이밍은 일찍 털어놓아도, 늦게 털어놓아도 더 이상 번지지 않도록 사건의 전말을 차단되는 시점이 아닐까. 발신인 표시제한으로 전화를 건 뒤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게 모양새를 취한, 서화인이 택한 방법은 요가였다. 분명 요가에는 기다림의 미학이 잠재되어 있었다. 특정한 자세를 통해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 정신적 하나와 무아지경, 삼매경, 황홀경에 도달하는 목표가 요가의 자세라면 충분히 그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남편을 만나기전에는 요가로 체력증진에 힘쓴 시기가 있었다. 상남자의 기질에 은근히 반해 앞뒤도 재보지 않고 선택한 남자가, 남편이었다. 자신의 일상은 언제나 뒷전이었고 알고 보니 남편은 실형전과 구범이었다. 폭력과 협박으로 자신의 소유물처럼 다루면서 급기야는 마리오네트라고 서슴없이 표현을 하였다. 마리오네트라면 실에 매달아 조작하는 인형인데 사실 그보다 낫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매일이 가스라이팅의 피해자로 남편을 받들고 살아온 셈이었다. 남편의 사망소식은 서화인에게 한동안 잊었던 요가를 불러왔다. 그 움직임에서, 곳곳에 남아있는 가스라이팅 상처를 아물게 하는 치유가 곁들여있어서 덩달아 보기 좋았다. 진지하게 요가에 전념하는 서화인의 표정이, 유리창을 통과한 초여름 햇살처럼 녹색으로 부드럽게 번지고 있었다.“뺑소니 운전자 형색은 어땠어요?”요가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가급적 눈에 띄지 않게 피해 다니는 내게, 불쑥 서화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색이라면?”“궁색하지 않는 옷매무새가 명품처럼 보였나요?”“명품인지 몰라도 그냥 중산층처럼 보였어요. 그건 왜요?”“그쪽에서 먼저 돈을 이야기했기에 그에 적절한 계산법으로 맞대응하는 것이 옳지 않겠어요. 요가는 명상이에요. 몇 번의 집중과 비움으로 적절한 그물망이 만들어지고 언제 실력발휘를 할까 지금은 고민 중.”“남편을 제거해준 고마움도 있는데 그냥 덮으면 안 될까요.”“남편에게 당한 상처를 어디에서 보상받을까 고민했는데 마침 대상자가 물색되었네요. 이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아요. 중산층처럼 보였다면 궁색하지 않아 고맙네요. 더 심사숙고해서 보상을 받는데 주력해야겠어요. 그러기위해선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하는 요가가 제격이겠죠.”그전에 알고 있던 서화인 같지 않아서 약간은 섬뜩했다. 혹시 남편의 가스라이팅으로 밀봉되어 있었던 성향이 아닐까. 혼돈스러운 마음에 표현봉 조각가의 전화를 받았다. 곤충생태공원 잠자리조각상 꼬리부분에서 균열이 보여 내일 주말이지만 동행이 필요하다고 했다. 망설이지 않고 여섯시에 작업실 앞으로 가겠다고 약속했다. 숨통이 트이게 가슴이 펴졌다. 잠시 떨어져 있으면서 생각을 다시 정리하고 싶었다. 서화인도 구체적인 방법을 세울 시간벌기라 생각했는지 싫은 기색이 아니었다. 곧게 두 다리를 양쪽으로 펼친 서화인의 요가는 계속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