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相煥 義士 略歷(조상환 의사 약력) ①曺相煥(조상환)은 字(자)는 石甫(석보)이오 貫鄕(관향)은 昌寧(창녕)이라 昌城府院君(창성부원군) 繼龍(계룡)의 遠孫(원손)이요 慈溪(자계) 龍翰(용한)의 六世孫(육세손)이라 檀紀四一九九(단기 4119), 西紀一八六六(서기1866), 高宗丙寅正月十日(고종병인정월십일) 慶尙道(경상도) 永川郡(영천군) 紫陽面(자양면) 巨洞里第(거동리제)에서 父 秉銓(부 병전) 母 李氏(모 이씨)의 長男(장남)으로 出生(출생)하다. 그의 家世(가세)는 본래 儒家(유가)로 전해오다가 그의 祖父(조부) 啓承(계승)이 早卒(조졸)하고 未亡人(미망인) 潁陽千氏(영양천씨) 孝烈(효열)이 특별하였으므로 鄕里(향리)에서 褒賞(포상)하였고 또 그의 父 秉銓(부 병전)이 早卒(조졸)하고 未亡人(미망인) 月城李氏(월성이씨) 또 孝烈(효열)이 있었으므로 또 鄕里(향리)에서 褒賞(포상)하였다. 公(공)은 이러한 家庭(가정)에 태어났으니 三綱五倫(삼강오륜)에 하는 일은 물론 잘 알 것이고 본래 性稟(성품)이 慷慨(강개)하고 膽略(담략)이 果敢(과감)하였다. 나이 十五歲(십오세)때부터 총쏘기를 좋아하여 천렵을 일삼고 옛날 영웅들의 이야기를 좋아하였기 때문에 삼국지, 조웅전, 유충렬전 등의 소설책들은 모두 통달하였으며 세간에는 등한하였다더라. 그때에 우리나라는 末運(말운)이 되어 公(공)이 났던 그해 丙寅(병인)양요로부터 시작되는 난리가 항상 뒤를 따르는데 壬午(임오)군란, 甲申(갑신)정변, 甲午(갑오)동란을 거쳐 왜놈들에게 乙未(을미)시역을 당하고 丙申(병신)창의를 말미암아 항상 모든 파란이 애국지사들의 신경을 괴롭게 하는데 모든 문제가 대다수 왜적들을 조심하고 원망하였다. 그렇게 하다가 乙巳(을사)년에 이르러 왜적들이 우리나라 역적들을 더불고 강제로 五條約(오조약)을 체결하니 이에 분격한 우리 국민들은 모두 설분할 계책을 강구하였다. 公(공)은 鄕里(향리)에 돌아다니면서 모든 사람을 더불고 울면서 말하기를 大丈夫(대장부)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이렇게 되는 시국을 보고 나랏일을 못 돌보면 이 나라의 백성된 보람이 없다 하고 대중을 격려시켰다. 이때에 애국지사로 著名(저명)한 丹吾公(단오공) 鄭鏞基(정용기) 그의 父公(부공)을 대행하여 임금의 密詔(밀조)를 받들고 義兵(의병)을 모집하니 그 倡義所(창의소)는 인근동인 檢丹(검단)에 있었다. 공은 남 먼저 창의소를 방문하여 모든 설비에 협조하기를 지원하고 普賢山(보현산) 주위를 순회하여 포수와 또는 뜻있는 사람들을 권유하여 入陣(입진)시키고 군수물자를 수집하다. 丙午 三月(병오 삼월)에 모든 사람들이 鄭鏞基(정용기)를 大將(대장)으로 추대하다. 진호를 山南義陣(산남의진)이라 정하고 部署(부서)를 조직할 때 公(공)은 都炮將(도포장)이란 임명을 받고 출발하여 列邑(열읍)에 진전하매 위험을 피하지 않고 싸우다. 丁未年(정미년) 가을에 立巖(입암)접전에서 大將(대장)이 순절하고 先大將(선대장)의 父公(부공) 東广先生(동엄선생)을 받들어 대장으로 추대하고 北東大山(북동대산) 지역에 들어가서 陣勢(진세)를 다시 정비하여 列邑(열읍)을 진격할 새 公(공)은 그때에 선발부대로 임명을 띠고 一枝軍(일지군)을 인솔하고 華山(화산)지역을 정탐하여 大陣(대진)이 西(서)로 向(향)할 때 新寧(신녕), 義城(의성), 義興(의흥), 軍威(군위) 모든 고을들을 무난히 격파하도록 하였다. 그해 겨울에 東广先生(동엄선생)이 순절하고 興海(흥해) 崔世翰公(최세한공)을 맞이하여 大將(대장)으로 추대하고 各 部將(각 부장)들이 각 지역을 분담할 때 公(공)은 李世紀公(이세기공)을 더불고 普賢山(보현산)지역을 맡아서 여러 고을을 진격하였다. 공의 氣岸(기안)을 참고로 逸話(일화)를 기록한다. 靑松(청송) 方壺亭(방호정)에서 황종복이란 사람이 軍紀(군기)를 문란케 한 일이 있기로 그 자리에서 蹴殺(축살)하였다더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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