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건강한 삶이란 한걸음씩 나아진다는 것 아닐까 싶었다. 내로하는 사상가를 여럿 두어 ‘스승 위의 스승’으로 불리는 다석 류영모 선생은 나이 열일곱에 득(得) 자를 파자(破字)해 이렇게 풀었다. “매일(日) 한 자씩(寸) 나아가는(行) 게 곧 얻는 것이다. 이루는 것이다.” ‘황진이 스캔들’로 잘 알려진 화담 서경덕은 소년시절 어린 새가 날마다 조금씩 더 높이 날아오르는 걸 보고 ‘배움이란 저래야 하는구나’라고 무릎을 쳤다. 고전 속 고사 ‘조삭비(鳥數飛)’가 우리에게 친숙한 것은 서경덕 선생의 이 일화 덕분이다. 나는 서른하나 10개월간 극심한 우울증을 앓으며 고향집 ‘봄전령’ 노루귀를 보고 ‘생명이란 저래야 하는구나. 자기 힘으로 서야 하는구나’를 깨달았다. 작디작은 노루귀가 여리디여린 꽃대를 곧추세웠다가 강추위가 들면 얼어죽고 날이 풀리면 재차 세차게 새 꽃망울을 틔워내 기어이 꽃을 피우는 걸 지켜보면서다. 그 작지만 어느 생명보다 다부진 노루귀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황계서실(黃溪書室) 봄전령을 자처하고 있다. 서른한 살 때 이 각성(覺醒)을 나는 영성(靈性)이라 느낀다. 마흔여섯 시작된 가슴으로 느끼는 독서를 나는 또 한 번의 영성이라 느낀다. 내 짧은 생애 두 번의 문리가 터졌음을 나는 느낀다.이른 아침 찻물을 우리고 책을 읽던 중에 나는 ‘내공(內功)’의 실상도 느낄 수 있었다. ‘20~30대는 기운을 밖으로 뿜어대며 수련하지만(=인간 경험), 40대부터는 기운을 안으로 모아 단련해야(=자기 공부) 단단한 내공을 갖겠구나.’ 나이 마흔이 넘어서면 말을 많이 해도 기가 쇠하지만, 쓸데없이 말 많은 사람을 보기만 해도 기가 빨리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모두 양기(陽氣)가 샌 경우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미사여구를 생략하고 할 말만 간명하게 해야 한다. 그러는 게 건강의 첩경이고 어른의 자격이다. 자기 공부는 이런 까닭으로 필요하다. 단 후학이 묻는 말에는 자상하게 재미있게 들려주어야 한다. 이 또한 건강과 어른의 자격이다.나는 지난해 8개월 두문불출 단련으로 이제 읽는 중에 짓기도 능히 가능해졌다. 이제 가슴이 하는 말을 따라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할 차례다. /심보통 202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