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산남의진유사(山南義陣遺史) 이형표 의사 조에 나오는 金思淳(김사순), 徐錫奎(서석규) 의사는 창의지나 유사에 따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산남의진 참진(參陣) 활동을 부정할 수 없다 하겠다. 그래서 현재 501분으로 의사록을 다시 정리해본다.이형표③또는 경상북도 관찰사(현, 도지사)가 중앙 경무청에 보낸 보고를 보면, 양력 丁未十月八日(정미시월팔일) 대구우체국 체송인 小野光太郞(소야광태랑)이 대구경주간에 우편물을 수송하다가 경주 서면에서 의병 數十名(수십명)에게 납치되어 피살당하고 우편물을 피탈당하였다 하였고, 戊申一月十八日(무신일월십팔일) 일본인 大浦辰藏(대포진장)이 영천 북향면에서 의병 三十名(삼십명)에게 발견되어 피살되었다 하였으며, 산남의진 기록을 보면, 음력 丁未十月(정미시월)에 산남의진이 신령읍을 격파하고 모집된 신병 數百名(수백명)을 좌포장 林中虎(임중호)에게 명령하여 인솔하고 주사산성 훈련장에 들어가서 훈련시켰다 하였으니, 우의 모든 증거를 간주하면 운문, 구룡 양산 인근에 전투를 지속한 시일도 상당한 년수를 경과하면서 본부의 조종을 받아서 이곳에서 유격전을 전개한 지휘인물은 金思淳(김사순), 林龍相(임용상), 孫晋球(손진구), 尹富儀(윤부의) 모든 영웅들이 최후 한사람까지 악전고투를 계속한 결과이다. 후방에서 오랜 세월을 경과하면서 물자보급을 계속하여 지나온 그 공적은 公(공)이 주동인물이 되고 徐錫奎(서석규) 등 여러 애국지사들이 분투하였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公(공)은 직접 진중에 들어가서 부서에 책임을 진 일도 있었다. 丙午年(병오년)에 본부가 청송, 진보 등지에서 주둔할 때 참모장 孫永珏(손영각)이 중상을 입고 치료하는 동안에 公(공)은 중군장 李韓久(이한구)의 초청을 받고 진에 들어가서 수개월간 참모장 직책을 실행하였다. 그 후 丁未(정미), 戊申(무신), 己酉年(기유년)간은 진후보급을 책임지고 운문, 구룡 양산 부대를 원조하다가 큰 운수가 넘어가기 시작되매 일선에 활동하던 장병들이 차례로 전말되고 三千里(삼천리)강토는 왜놈의 식민지로 되고 二千萬(이천만) 민족은 왜놈의 노예가 되었다. 그때에 놈들의 포악한 행동을 보면 의병이 전말되고 의병을 원조한 그곳에 독을 불리는데 의병을 원조한 그 사람은 말할 나위도 없이 되고 동리까지도 불바다로 만든 일이 많았다. 그런 입장에 있어 公(공)은 생명을 보존하였고 그 지방도 큰 화를 면하였으니 公(공)의 피신방법이 기묘한 것을 칭찬할 일이고, 그 지방이 그 정도로 지나온 것을 보면 그 지방의 인심이 애국자의 집단지인 관계로 겪어온 행동을 잘 은휘한 것을 칭찬할 일이다. 公(공)은 근심 많은 이 생애로 처신하면서 조국광복을 도모하다가 甲子十一月二十九日(갑자십일월이십구일) 향년 六十(육십)세를 일기로 하고 한 많은 이 세상을 떠났다. <山南義陣遺史369~373p>공훈전자사료관 공훈록경북 영천(永川) 사람이다. 정용기(鄭鏞基) 의진에 가담하여 경북 영천 일대에서 활약하였다.1905년 11월 일제는 대한제국 정부를 강박하여 「을사륵약(乙巳勒約)」을 체결하여 외교권을 박탈하고 주권을 제약하였다. 이에 분격하여 우리 민족은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의 의병운동을 일으켜 무너져가는 국권을 회복코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이형표는 반일 의병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목적을 가지고 1906년 3월 정용기 의병장이 각 고을 포수(砲手) 및 민병들로 산남창의진(山南倡義陣)을 구성할 때 경북 영천군 담당자로 활동하였다. 을사륵약 이듬해인 1906년 영남에서 의병을 일으켜 북상할 것을 결심한 정용기(鄭鏞基) 의병장은 영천으로 내려가 통유문과 격려문을 각계 각층에 보내어 함께 의병에 참가하기를 권고하고 총궐기를 촉구하였다. 또한 정용기 의병장은 각 지역별로 인원을 배치하여 의거 진행 계획에 대한 연락을 맡게 하였다. 당시 정용기 의병장 휘하에서 이를 담당하던 사람은 이형표 외에 이수인(李壽寅)·정치석(鄭致錫)·이두규(李斗圭)·정진영(鄭鎭英) 등이 있었다. 이들은 각지의 동지들과 비밀리에 연락을 취하는 한편 사재를 털어 무기와 군량·군복 등을 의병 진중에 헌납하는 등의 지원활동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즐겨찾기+ 최종편집: 2025-05-01 19:38:15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원격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동정
이 사람
데스크 칼럼
가장 많이 본 뉴스
상호: 경북동부신문 / 주소: 경상북도 영천시 최무선로 280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64 / 등록일 : 2003-06-10
발행인: 김형산 / 편집인: 양보운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보운 / 편집국장: 최병식 / 논설주간 조충래
mail: d3388100@hanmail.net / Tel: 054-338-8100 / Fax : 054-338-8130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