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여자(9)텐트 밖을 나왔을 때 약간의 한기를 느꼈다. 몸이 전해주는 신호는, 무언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고 믿었다. 깡마른 여자는, 그것이 기어코 승리를 쟁취한 가장 힘센 정자의 용트림이라고 생각되었다. 떨쳐내기 위해, 물리치기 위해, 마지막까지 남아 난자에 착상되기 위한 신호탄이 한기로 전해지는 것은 아닐까. 남자여, 세월은 흘러 자호천에 다다를 기회가 있을 때, 올망졸망한 몽돌 위를 뛰어다니는 조막만한 아이가 보이면 당신의 아이일지 모른다. 의심해도 괜찮고 한번 번쩍 안아 봐도 괜찮고.우린 그런 인연으로 만났지만 그보다 더한 인연이 허락된다면 아이를 매개로 어떻게 결말이 날지 모르는 생은 시작될 것이다. 그렇게 기대하라. 다만 지금은 원활하게 착상되는 것이 시급하다. 새롭고 낯선 몸에 이끌려 세 번, 네 번 사정한 왕성한 남자의 정자들은 골목골목을 누비며 밤새는 줄 몰라도 정작 필요한 것은 똘똘하고 힘센 한 마리이리라. 응원해줄래. 깡마른 여자는 왔던 길을 되돌아 지하실로 통하는 나무문짝 입구에 멈췄다. 그리고 목을 빼서 캠핑 족이 쳐놓은 텐트전부를 눈에 담았다.설렘과 흥분과 자유로움과 성취감을 맛보려는 캠핑 마니아들의 거침없는 웃음과 몸짓이 왠지 자극을 가져왔다. 시선을 거두면서 일인용 텐트에 눈길이 멎었다. 남자는 무엇엔가 홀린 듯 갑작스럽게 닥친 쾌감의 흔적을 은근히 텐트 안에서 누리고 있을 것이다. 비둘기가 순조롭게 드나들 수 있게 나무문짝을 더 허술하게 흔들어 놓았다. 나무판자의 배열도 눈에 띄게 이탈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다시 그 어두운 지하실 통로를 더듬어 집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헤매던 지하실 통로와는 달리, 한번 와본 통로라서 그런지 걸음이 바빠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와 소파에 가만히 누웠다. 홀몸이 아니라는 생각이 보호막을 쳐놓은 듯 조심스럽게 자신을 다루고 있었다. 깡마른 여자는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맨살의 배를 만져보았다. 세 시간 전 관계하여 돌격 앞으로 하는 정자에 대한 신뢰감은 사뭇 진지했다. 당장에라도 십일 후를 기다리지 않고 테스트기를 들이댈 착각 속에서 깡마른 여자는 엉덩이 밑에 베개를 받쳐주었다. 혹시나 한 방울이라도 흘러내리는 일없이 맹렬하게 활동해달라는 염원도 베개에 실어주었다. “수피아에게 임신은 무엇인가요?”자신의 이야기를 가급적 담백하게 들려주려고 애쓴 그녀가 목이 마른지 생수병 마개를 땄다. 밀폐된 공간이 순간 열리는 소리가 미세하게 우로지 늪으로 퍼져나가면서 이명처럼 닿았다. 청량음료도 아닌데 마개에서 소리는,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도 귀 울림애서 오는 윙윙거림으로 느껴졌다. 다시 나이 탓인가 했다. “당당하게 세상으로 들어가는 거겠죠. 출산장려정책에 기여하고...”거기까지 얘기하고 그녀가 멋쩍게 웃었다. 아마 은둔형 외톨이를 자처하지 않았지만, 고립되어 가는 삶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방법이 어쩌면 임신일 것이다. 임신은 우울증으로 뒤처져있는 삶의 전반을 뒤엎을 수 있는 반전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수피아의 얘기대로 정말 그렇게 낯선 남자에게 행동했다면 그만큼 간절하고 절실했다는 것은 분명했다. 이웃도 없이 산을 깎아 지은 주택에서 생활은,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외로움 그 자체일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열흘 뒤 임신 테스기는 어떻게 나왔나요?”“그렇게 정성스럽게 몸을 아꼈는데 한 줄로... 아저씨, 집 구경시켜줄까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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