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것보다는 한 번의 기술개발로 고소득을 올리는 모험을 더 좋아합니다. 적게 벌더라도 절약하는 생활로 열심히 저축하며 사는 사람은 능력 없는 사람으로 여기게 되고, 점점 외형적인 화려함을 쫓아가는 경향이 많습니다.그러므로 사회가 변해야 한다는 것은 벤처기업으로 혹은 증권이나 코스닥이니 나스닥이니 하는 것으로 조금 투자해서 단시간에 일확천금을 얻는 사람이 대우를 받는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게 일하는 사람,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제대로 대우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육을 담당한 사람들에 대한 대우도 달라져야 하며, 교육 열의가 있고, 숙련된 교사들에 대한 예우가 있어야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바로 교육자들도 새로운 능력을 갖추는데 쉼 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지적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는 교사가 한발 앞서가야 합니다. 요즘 아이들이 학교를 기피하는 현상이 있는 것은 학교에서 자신들의 지적욕구를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학원에서 모든 것을 배우고 학교는 졸업장을 따기 위해 다니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교사들도 잘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아무튼 어느 분야에서 일하든 능력을 갖추고, 사명감을 갖고 근면한 정신으로 일하는 것이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부처님께서는 내세에 행복을 이끌어주는 덕을 네 가지로 말씀해 주셨습니다.첫째는 신(信)으로 도덕적, 정신적, 지적(矢) 가치를 믿고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계(戒)로 훔치고 속이고 거짓말 하는 등의 파괴적이고 해로운 생활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사(捨)로 부(富)에 대한 애착과 갈망을 갖지 말고 자선,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고, 넷째는 혜(慧)로 번뇌를 없애고 열반의 경지로 이끄는 지혜를 닦으라는 가르침입니다.요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얼마나 능력을 갖고 있느냐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도덕관이 바로 서 있고, 정신적으로 숭고한 사람은 마치 능력이 없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물질을 얻기 위해서는 숭고한 정신보다 순간적인 센스가 있어야 하고, 기회를 잘 포착하여 취할 줄 아는 민첩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경제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정보력, 센스, 민첩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도 새로운 세대를 살아가는 능력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경제력은 보다 높고 숭고한 정신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즉 경제력은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한 요소일 뿐이지, 행복을 이루는 근원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숭고한 정신도, 확고한 도덕도 없는 경제력은 진실한 행복을 주지않습니다. 오히려 현세에 그 과보를 받아 더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되거나니 내세에 행복을 얻지 못하고 고통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아무리 물질 만능주의가 성행한다고 하더라도 이 사회에 종교가 필요한 것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추구해야 할 정신적, 도덕적 기반을 닦는데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믿고 의지하면서 부지런히 정신적 수행을 닦는 사람은 비록 물질이 조금 부족하고, 간혹 어려움에 빠지더라도 그러한 삶 속에서 행복을 거두게 됩니다. 돈이 많은 사람에게 1백만 원을 주었다고 합시다. 아마 그들은 1백만 원이라는 돈을 아이들 용돈 정도로 생각하고 귀하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경제적으로 궁핍하더라도 근면하게, 인내하며 사는 사람에게 1백만 원을 주면 행복을 증폭하는데 사용할 것입니다. 그 돈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앞에서 보살행을 한 두 불자를 소개했습니다만 이처럼 직업에 충실하고, 근면하게 사는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보시 행에 쓰는 것은 바로 자신의 정신적 품성을 더 높게 하는 동시에 평화롭고 행복한 사회를 일구어 가는 사람입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