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 아저씨야, 그걸 말이라고 해? 저기 꺾어진 곳에서 엉덩이만 떼고 보면 안쪽 소파가 제대로 보이기나 하겠어? 데스크에서 소파 쪽에서 걸어 나와 보면 이 큰 점퍼가 왜 안 보여? 당신 눈에는 이게 콩알처럼 보여?” “……” “그리고 말이야. 저 아가씨는 왜 저렇게 남 얘기하듯 말을 해? 우리도 실수를 했지만, 약국에서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고 없다고 회신을 넣었으면 도의적으로라도 ‘죄송합니다’고 한마디 하면 될 일 아닌가?”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저 아가씨 태도와 말투는 대체 왜 저 모양이야? 약국은 친절이 기본 아닌가? 교육이 제대로 안 된 거잖소.” “제가 교육을 다시 시키겠습니다.” “당신은 애 안 키워? 이 바쁜 저녁 시간에 조금만 관심을 갖고 봐줬으면 될 일을, 약국 들어오자마자 떡 하니 보이니 당신 같으면 성질나 안나? 무슨 일을 이따위로 하나? 아주 기본적인 거 아니야. 정말 성질 뻗치게 말이야.” “……” 그렇게 할 소리를 해주고 나왔다.오늘 아침에도 ‘얼결 사건’이 이어졌다. 어젯밤 집사람 회사 선배가 아이들 전집을 주겠노라며 퇴근하고 문앞에 내놓을 테니 찾아가라고 했다. 아이 점퍼 찾고 돌아오는 시간이면 충분히 찾아오리라 싶었지만, 책을 주겠다는 사람은 그길로 오늘 아침까지 깜깜 무소식이었다. 아내에게 그 분이 밤에 내놓으면 내일 아침 출근 전에 찾아오마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답이 있더냐고 물었다. 없다고 했다. 고위공무원이라는데 일처리가 얼결(얼떨떨)했다. “그 분 일처리가 뭔가 이상한데.” 그 분을 믿고 문앞으로 가 볼 수도 있는 일이지만, 왠지 헛걸음하겠다 싶어 확실한 답을 받고 가마 했다. 집사람은 출근을 한 뒤 문자를 받았던 모양이다. ‘밖에 내놓으셨대.’ 끌차를 끌고 길 건너 아파트로 갔다. 문앞에 당도해 보니 휑하니 아무것도 없었다. 집사람과 고위공무원 간 주고받은 문자는 ‘밖에 내놓았다’ ‘오후에 일찍 퇴근해서 찾아가겠습니다’였다. 나는 밖에 내놨다니 찾으러 간 것이었다. 참 ‘얼결’한 사람이다 싶었다. 집사람이 말귀를 잘못 알아먹은 것인지, 그 분이 말을 잘못 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얼결 혹은 얼결한 사람 옆에 깜냥을 놓으면, 내 셈법으로는 인간은 결국 제 깜냥대로, 깜냥만큼만 산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는 그걸 지력(智力)이라 부르고, 사안을 꿰뚫어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푼다.동시대인은 상당수가 해마다 세분화되는 ‘일’과 뜬구름 같은 ‘돈’에 혈안이 되어 얼결에 처박혀들 산다. 이 얼결을 잘 다스리면서 깜냥대로 살면 그 삶은 ‘꽁냥꽁냥’이고, 잘 다스리지 못한 채 깜냥대로 살면 ‘어찔어찔’할 뿐이다. 못 배운 티 팍팍 나는 약국의 안내원이나 6년씩이나 과정을 밟아 약사고시에 통과해서는 닭장 같이 비좁은 곳에서 닭이 모이 쪼듯 대가리 숙여 제조된 약이나 토스해 주는 약사 인생이나, 행정고시 패스해서 좁장한 공직세계에 갇혀서는 기본적인 약속 지키는 법과 기본적인 대화하는 법마저 잊은 고위공무원 아줌마나 참 불쌍한 인생들을 살고 있다 싶었다.한편으로는 학교 시험 점수 높았던 소위 배운 것들이 이 정도 하찮은 지력인데, 나머지 인생들은 기대가 난망이다 싶으니 진짜 아침부터 아찔아찔하다. 이보다 더 서글프고 심각한 사실은 이 불쌍한 인생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소위 지성인(知性人)이 신문구독자 수만큼이나 보기 귀해졌다는 것이다. 한 줌 재밖에 되질 않을 뼛덩어리를 뭐 하러 그렇게 아끼고 사는지 모르겠다. (간땡이들이 그렇게 작아서야, 나 원 참.) 맞아 죽더라도 할 소리, 쓴 소리, 바른 소리는 적재적소에 하면서 살았으면 싶다. 우습고도 슬픈 일이지만 그것도 이 시대에는 참 큰 덕(德)을 쌓는 일이 돼버렸다. 다만 제 행실은 개차반이면서 남 행실 지적하면 그건 더 없이 추잡한 업(業)이 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깜냥 얼결, 얼결 깜냥. 꽁냥꽁냥, 어질어질. 귀하는 어디 편에 있는가? 어느 쪽에 서 있는가./심보통 2024.1.9. *아이들 전집을 주겠다는 집사람 동료에 대한 내 처방은? 확인하지 말고 그냥 둬그쪽에서 왜 안 오냐고 하면 우리 사정을 이야기해줘그게 흐름상 맞아그 책 달라고 한 적도 없고 자기가 주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흐리멍덩하면 굳이우리가 궁금해 할 필요는 없는 거야초등 4학년 책을 벌써 갔다 놔서 어쩌려고 하나필요 없을 듯지금 책으로도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