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여자(11)수피아의 말에 너무 몰입한 탓일까. 일인용 텐트를 향한 간절함으로, 앞뒤도 재지 않고 풍덩 뛰어든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깊이도 넓이도 알 수 없는 이 무대포 적인 행동에 적잖이 놀란 것은 먼저 자신이었다. 혼자 일박 텐트에 도전할 여자가 몇이 되겠으며, 그런 확률이 전재된다면 위험스런 발상에 동참한 모양새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혹시나 누워있는 남자를, 텐트 안에서 만난다면 난감한 상황을 타개할 대책은 처음부터 없었다. 천만다행으로 일인용 텐트는 알박기 텐트처럼 산만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오래 비워둔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여자는커녕 남자도 텐트 안에 없었다는 것에 참으로 안도의 숨고르기를 했다. 먼지며, 죽은 곤충이며, 매캐한 냄새며, 거미줄까지 한통속으로 텐트 속은 정물처럼 멈춰있었다. 내가 움직이는 몸짓 따라 들썩거리는 풍경은, 미지의 세상에서 길어 올려 진 혹성 마냥 이야기꺼리를 만들고 있었다. 상처투성인 한남자의 고름을 짜주듯 물풀 냄새 먹은 햇살이 수시로 다녀갔다. 자호천은 캠핑족들이 필히 챙겨야하는 필수요소였다. 물소리가 자우룩이 깔린 텐트촌은 출렁거리듯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위헌천만한 게임을 끝낸 스릴만점의 발걸음을 옮겼다. 백사장에 찍힌 발자국은 어느 원시인이 지나간 화석처럼 선명했다. 돌아보면서 저래도 될까, 저렇게 남겨둬도 될까, 선명한 채로 모양을 잡을 때 한 겹씩 밀려와 두꺼워지는 물결을 내심 기다렸다. 발자국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잠시 머뭇거렸고, 쪼그리고 앉아 저린 발바닥을 어루만졌다. 숨통이 발바닥에서 만져졌다. 지금쯤 샤워를 끝낸 수피아는 나를 찾고 있을 것이다. 지하실 출입문을 열었다. 나무판자가 제각각 덜렁대며 허술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 틈새로 비둘기들이 드나들었겠지. 완벽하거나 단단하면 그만큼의 철통보안은 보장되겠지만 하늘보다 더 먼 곳에 있는 세상은 멀어질 것이다. 개구멍이 있어야 앞날의 눈을 뜨는 학교처럼, 조금씩 허술하게 그대로 방치해두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고 믿었다. 지하실 통로를 따라 어둠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모래알갱이가 줄기차게 따라오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점프를 하며 발바닥을 마주쳤다. 후둑 후두둑. 모래알갱이가 사방으로 퍼졌다. 발걸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발로 쓰러뜨린 돌탑이 약간 거슬렸지만 꼿꼿하게 무시하기로 했다. 집으로 통하는 계단을 밟으면서 유달리 길었다고 생각한 오늘 하루가 턱밑까지 와있었다. 집안으로 들어갔을 때 수피아는 욕실가운 속에 알몸을 감추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는 것도 숨기지 않았다. 입모양으로 봐서, 어디 갔다 왔느냐며 물으려다 애써 입을 닫는 모습이 토라진 것도 같았다. 귀엽게 느껴졌다.“아저씨, 외출 후 씻으셔야죠? 샤워는 긴장된 근육을 풀게 하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씻어내는 상징적인 의미에 대해 알고 계시죠. 그리고 또 다른 역사의 시작이라는 사실, 명심하세요.”욕실에 들어가 훌렁훌렁 옷을 벗으며 그녀의 말속에 소화되지 않은, ‘또 다른 역사의 시작’에 대해서 곱씹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물줄기를 향해 고개를 들어 정면으로 맞받으면서도 그 생각을 좀체 지울 수 없었다. 욕실 문이 빼꼼 열리면서 수피아는 욕실가운을 안으로 집어 넣어주었다. 김칫국을 먼저 마시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괜히 긴장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샤워를 끝낸 몸은 이야기꾼처럼 조잘대기 시작했다. 물기가 채가시지 않는 몸을 욕실 가운 안으로 집어넣었다. 뭔가 잠자고 있던 야성이 꿈틀대는 느낌을 장착한 채 욕실 문을 열었다. -계속
즐겨찾기+ 최종편집: 2025-05-01 19:56:59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원격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동정
이 사람
데스크 칼럼
가장 많이 본 뉴스
상호: 경북동부신문 / 주소: 경상북도 영천시 최무선로 280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64 / 등록일 : 2003-06-10
발행인: 김형산 / 편집인: 양보운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보운 / 편집국장: 최병식 / 논설주간 조충래
mail: d3388100@hanmail.net / Tel: 054-338-8100 / Fax : 054-338-8130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