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남의진열전(山南義陣列傳) 118김태환 의사에 대한 기록은 창의지와 유사가 자못 다르다. 창의지에서는 동엄선생 사후의 활동 기록이 없다. 그런데 유사에는 끝까지 참여함은 물론 창의지가 출판될 당시인 1946년 위령제와 1963년 산남의진기념비 제막식에서 생존영광에 대한 축하를 받았음을 기록하고 있다. 창의지 기록자의 자료 수집 한계였거나 산 자의 구술에 의한 기록 추가였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金泰煥 義士 略歷(김태환 의사 약력)③공수(空手)로서 강적을 상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벌써 적의 포위망 속에 들어있는 우리는 이 지역에서 활동이 곤란하니 탄약을 준비하여 적을 욱지로 유입한 연후에 대항할 것이라 약속을 정하고 일시에 전군을 각지로 파견하여 군수품을 모집하여 江原道(강원도) 地域(지역)에 집합하기로 분부하여 전군을 각지로 出動(출동)시키다 그때 公(공)은 淸河地方(청하지방)에서 활동하더니 그 사이에 不運(불운)하게도 東广先生(동엄선생)이 被執(피집)되어 적은 先生(선생)에게 歸順(귀순)을 勸誘(권유)하면서 沿海(연해) 各郡(각군)을 경유하여 大邱(대구)로 押送(압송)하게 되는지라 公(공)은 各部要人(각부요인)들과 의논하고 先生(선생)을 奪還(탈환)코저 河陽(하양) 비로에 잠복하여 대기하였더니 적은 이 기밀을 알고 慶山(경산)으로 作路(작로)하였기에 우리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先生(선생)은 다시 永川(영천)에 돌아와서 殉節(순절)하다 그 뒤를 잇달아서 中軍將(중군장) 李世紀(이세기)의 조정으로 長鬐邑(장기읍)을 습격하여 적의 중요한 건물을 모두 소각시키고 무기 등속을 탈취하다 東广先生(동엄선생)이 軍中(군중)에 遺言(유언)하시기를 나의 뒤에 책임을 맡길 자는 崔世翰(최세한)이라 하셨기에 大衆(대중)은 先將(선장)의 遺命(유명)을 받들어서 崔世翰(최세한)을 大將(대장)으로 推戴(추대)하다 적의 형세가 점점 강성하게 되고 따라서 우리는 모든 일이 극도로 불리할 무렵이라 各部要人(각부요인)들이 議定(의정)한 결과에 각기 地域別(지역별)로 分派(분파)되어 유격전을 지속하였는데 그 저명한 지역분대를 들어서 말하면 남동대산본부 북동대산분대 보현산분대 팔공산분대 청송동부분대 청송서부분대 소백산분대 운문산분대 철영산분대 주사산분대 등으로 나누어서 서로 기맥을 통하고 적과 싸운 광경은 慶尙道(경상도) 全域(전역)에 하루에도 數十處(수십처)의 전투를 겪은 날이 있었고 몇해 동안에 數千(수천) 同志(동지)의 死傷(사상)을 이루었고 어떤 村落(촌락)들은 잠시에 불바다로 화한 일도 있었다 이와같이 악전고투를 계속하여 오다가 대세가 기울어지기 시작되매 각 분대들이 차례 차례로 패멸되고 결국은 禹在龍(우재룡)이 지휘하던 팔공산분대의 멸망으로서 종말이 되었다 公(공)은 鄕里(향리)에 돌아와서 山谷(산곡)에 은신하고 宗族(종족)들의 보호로서 生命(생명)을 유지하면서 光復同志(광복동지)들의 秘密結社(비밀결사)에 연락되어 암중활동을 꾸준히 계속하였다 檀紀(단기) 四二七八年(4278년) 西紀(서기) 一九四五年(1945년) 乙酉(을유) 八月十五日(8월15일)에 解放(해방)을 맞이하다 檀紀(단기) 四二七九年(4279년) 西紀(서기) 一九四六년(1946년) 丙戌(병술) 二月十五日(2월15일)에 서울光復會(광복회)의 主催(주최)로서 社會各界(사회각계)의 後援(후원)으로 山南義陣殉國將兵(산남의진순국장병)의 慰靈祭(위령제)를 立巖市場里(입암시장리)에서 擧行(거행)하다 祭禮(제례)를 마치고 會中(회중)으로부터 生存榮光(생존영광)에 對(대)한 祝賀(축하)를 받았다 檀紀(단기) 四二九六年(4296년) 西紀 一九六三年(1963년) 癸卯(계묘) 四月十七日(4월17일)에 山南義陣紀念事業會(산남의진기념사업회)의 主催(주최)로 慶尙北道(경상북도)의 後援(후원)과 社會各界(사회각계)의 協助(협조)로서 山南義陣紀念碑(산남의진기념비)를 永川邑(영천읍) 朝陽閣(조양각) 庭園(정원)에 建立(건립)하고 仝(동) 除幕式場(제막식장)에서 頌功章(송공장)을 받고 또 慶尙北道知事(경상북도지사)의 招請(초청)으로 生存榮光(생존영광)에 對(대)한 慰安會(위안회)에 優秀(우수)한 待遇(대우)를 받았다 檀紀(단기) 四二九八年(4298년) 西紀(서기) 一九六五년(1965년) 乙巳(을사) 正月二日(1월2일)에 無病無痛(무병무통)으로 別世(별세)하다 檀紀(단기) 四二九九年(4299년) 西紀(서기) 一九六六년(1946년) 丙午(병오) 三月二十三日(3월23일)에 山南義陣追慕會(산남의진추모회)의 主催(주최)로 社會各界(사회각계)의 協助(협조)로서 迎日郡(영일군) 杞溪面(기계면) 芝柯洞(지가동) 後山(후산)에 公(공)의 墓道碑(묘도비)를 建立(건립)하고 各界(각계)의 來賓(내빈) 祝賀(축하)로서 除幕(제막)을 올리다 <山南義陣遺史382~3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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