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0일) 대구를 다녀왔다. 올해 첫 외출이자 마지막 외출이다. 나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불출(不出)할 작정이다. 불출하며 독서에 정성을 다할 요량이다. 그런 중에 올해부터는 다시 쓰기에 일로매진할 참이다. 글공부란 걸 해 보면 아주 담백한 일상을 얼마나 잘 가꾸는지가 관건이란 걸 체득하게 된다. 담백한 일상의 줏대는 기복 없는 항상심(恒常心)을 유지하는 것이다. 고요하되 뚝심 있게 흐르는 맑은 시냇물처럼 부드럽되 근기(根氣) 잃지 않는 맑은 정신으로 통섭적 읽기.- 이것이야말로 작가의 기본 중의 기본이 아닌가 싶다. 아니, 이 같은 정신은 차라리 모든 직업인의 기본자세라 해야 옳을 것이다.어제 선배 몇 분을 만나고 왔다. 일진이 아주 좋은 날이었고 묘한 날이기도 했다.이근욱 선배님이 동대구로역으로 마중나오셨다. 대구의 공기는 산뜻했고 겨울날씨 같지 않게 포근했다. 선배님 차로 선배님이 부러 생각해 놓은 경산 소재 옛날식 소고기찌개 노포로 점심을 하러 갔다. 식당 여주인은 우리 직전 손님들까지 대기시간이 제법 길었노라 귀띔해주었다. 허름하지만 생기(生氣)가 남다른 식당. 그 식당의 식탁에 오른 소고기찌개는 시나브로 술을 불렀다. 6년 만에 가진 만남에, 그것도 신년이겠다 술 한잔 부딪히지 않는 게 선배님께는 숫제 불손이요 비례(非禮)이다 싶었다.소주를 한병 시켜놓고 차 안에서 풀다 만 회포를 이어갔다. 소고기찌개가 입에서 달달하게 씹히는 중에 침이 절로 솟는 것이 참으로 맛있었다. 이런 걸 두고 별미라는 겔게다. 별미와 함께하는 소주는 특유의 쓴맛 대신 단맛을 돋우었다. 점심을 먹고는 늘 그립고 감사한 분이 계신 곳, 언제든 고향집처럼 따스하게 반갑게 맞이해주는 곳, 기물(氣物)이 가득해 양기(陽氣)가 휘감아 도는 곳, 마음그릇이 더없이 넓은 내 보이차 선생님 계신 곳, 대한민국 최고의 보이찻집 <보석다관>으로 이동했다.이근욱 선배님과 <보석다관> 양보석 선생님은 기질적으로 합(合)이 잘 맞는 분들이다.이근욱 선배님은 작년 7월말 영남일보를 퇴직, 새해 1월 3일자로 한국경제 대구경북 지사장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양보석 선생님은 재작년 12월말 공직에서 물러나 30년 숙원이었던 다관을 시작하셨다. 두 분 다 30년 넘는 직장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제2인생에 무사히 안착하신 것이다.나는 이근욱 선배님이 한국경제에서의 삶을 <보석다관>에서 잘 활용하시면 좋겠다 싶었다.다관(茶館)은 중국 사람들의 사교장. 점심 식사 후 담소를 나누고 정보를 얻는 장소라는 뜻이다. 프랑스로 치면 살롱이고, 미국으로 치면 커피숍, 우리네 고조선으로 치면 신시(神市)와 같은 곳이다. 다만 다관과 살롱, 커피숍이 좁은 장소의 교류장이라면 신시는 오늘날 시장과 같은 넓은 장소의 교류장이다. 양 선생님이 내게 팽주(烹主·차를 우려주는 사람)를 권했다. 주인장께서 선배님 대접을 직접하라 배려해 주신 것이다.나는 팽주가 되어 차를 우리고 두 분은 마주앉아 다담(茶談)을 시작했다. 두 고수의 대화는 유리 숙우(공도배)에 담긴 보이차가 찻잔에 부드럽게 흘러내리듯 청산유수로 흘러갔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에 내가 끼어들 필요는 없었다. 팽주 역할만 잘하면 됐다. 1시간은 금방 흘렀다. 그 시간, 다관에는 여성 1분과 남성 1분이 각기 다른 테이블에 앉아 차를 즐기고 있었다. 여성 1분은 대구 불교방송 관계자였고, 남성 1분은 전직 조선일보 대구경북 광고지사의 차장 출신이었다.이근욱 선배님은 이 남성이 안면이 있다고 하시면서 다관을 떠났다. 여성분은 그보다 10분 일찍 자리를 정리했다. 선생님과 나 그리고 남성 1분이 남았다. 셋은 한 테이블에 앉았다. 그도 이근욱 선배님이 눈에 익는다고 했다. 출신을 따져보니 같은 업계 종사자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