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여자(14)수피아의 집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며 혹시나 마주칠 확률을 높이는데 고군분투했다. 물론 초인종을 누르거나 대놓고 CCTV에 찍히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런 강심장은 애초부터 멀리하고 살아온, 젬병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우연을 가장으로 언젠가 마트나 산책을 나왔을 경우 놀란 표정으로 만나고 싶었다. 그렇다면 수시로 그 집 주변에 딴청을 피우며 배회했다. 어쩌면 잠복에 들어갔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었다. 마흔 살 이상 차이나는 여자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 한심스럽고 참담했지만 정자를 제공한 지아비의 마음으로, 스스로를 달랠 수 있었다. 가을비가 오는 날도 여지없이 집주변을 배회하며 인기척에 귀를 쫑긋 세웠다. 우산은 일부로 쓰지 않았다. 비 맞은 생쥐 꼴로 측은지심을 얻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집안으로 들어갈 기회가 생길 것 같았다. 그렇지만 대문은 열릴 기색이 없었다. 먹을 것이 얼마나 산더미처럼 있는지는 몰라도, 이쯤 되면 마트에 다녀올 법한데 철저히 바깥세상과 담을 쌓아놓고 있었다. 두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불안하기도 하고 궁금증은 증폭 되어갔다. 정자와 난자의 만남에서 부터 착상이 되었는지 그것만이라도 정말 알고 싶었다. 임신이 아니라면 깔끔하게 미련 없이 돌아설 것 같았다. 그렇게 허송세월이라면 허송세월인 의미 없는 시간을 끔뻑끔뻑 넘기다가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여전히 백수면 이쪽으로 넘어와라. 단기 일자리인데 지킴이 선생이 인공 무릎관절 수술에 들어갔어. 두 달 정도 네가 공백을 채워주라.”피폐해져 곧 두 손 들고 항복할 위기에 처해 있던 내게, 숨 쉴 구멍 하나가 생겼다. 학교근방에 두 달 원룸을 얻어 무전여행을 떠나는 젊은 객기처럼 단출하게 짐을 풀었다. 이 나이에도 설렘과 기대감과 새로운 시작의 심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마 수피아를 향한 마음을 거세게 분질러 놓고 싶은 연유에서, 더욱 더 매달리고 싶었을 게다. 기숙사 사감으로 있는 친구는 자신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더 고마운 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엷은 미소를 짓고 말았다. 등하굣길의 안전과 잡상인의 통제가 주요업무라는 교육을 받고 투입이 된 내게 친구가 한마디 덧붙였다. 나머지는 눈치껏, 눈치껏 하는 행동이 어색하지 않으면 그 눈치에 ‘껏’을 부쳐도 통했다는 말로 읽힌다고 했다. 그래서 눈치껏 지킴이 업무에 충실하게 되었다. 눈썰미 있게 빨리 업무를 습득한다는, 교장의 칭찬을 들은 그날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입력되지 않았지만 왠지 낯설지 않았고 한번쯤 담아둔 번호 같았다. 저쪽에서 수피아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뱅뱅 맴돌다가 화가 나서 지워버린 수피아의 번호였다. “아저씨, 뭐 하세요?”“뭐하긴 일하지.”약간은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으면서 수위를 낮추고 싶었다. 서운함으로 주고받기에는 내가 가진 궁금증과 미련이 더 컸다. “웬 일? 아저씨는 먹고 사는 데는 지장 없을 정도의 연금이 나온다고 하지 않았나?”“세상에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그럼 지금 오지 못하겠네요.”“두 달 약속한 날짜를 채워줘야 해.”그만큼 상처를 입지 않았다는 모습을 숨기며, 무덤덤하게 전화를 받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