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단풍철이다. 결실의 계절이라는 가을인데 종잡을 수 없는 날씨가 사람의 애간장을 녹인다. 계속되는 늦더위 뒤에 다시 잦은 비와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사람도 사람이려니와 작물들도 시원찮다. 배춧값이 천정부지로 떨어질 줄 모르는데 김장철은 다가오고 심어놓은 배추가 제대로 영글어 줄지 걱정이다. 하기야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 그저 뜰앞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이나 즐길 일이다. 안수원자는 천여이고, 본관은 순흥이다. 회헌선생 유의 먼 후손인데, 서기 철종 신유(1861년)에 안동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담력과 지략이 있었고 활 또는 총을 잘 쏘아 이름이 있더니 산남의진이 일어남에 이르러 맨 먼저 의진에 종사하면서 대장의 신임을 얻어 점군검찰관이 되었다. 입암에서 패전하자 천여는 분통함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해 뜻을 함께하는 수백 명과 더불어 하늘에 드리는 제사를 올리고 동엄공을 도와 힘을 다해 여러 고을의 싸움에서 한 번도 좌절함이 없었다. 그러나 동엄공이 또 해를 입자 드디어 뜻을 함께하는 사람 수백 명과 힘을 합해 각 지역을 경영하였으나 청하 보경사의 싸움에서 이롭지 못하였고, 또 1908년 무신 (음력)3월 16일 기계 덕동에서의 싸움에서도 모든 군사들이 패주하고 적에게 붙잡힐 지경에 이르자 천여는 군사적 사실을 기록해두었던 서책들을 찢어 물에 던져버리고 죽기로 싸웠다. 하지만 적의 많은 군대를 이기기 못하고 결국 적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처음 청하 감옥에 갇히자 옥문을 발길로 차고 탈출하다가 발각되어 적에게 포위되어 어지러이 두들겨 맞아 사흘이 지나서야 깨어났다. 철사로 온몸이 묶인 채로 흥해읍을 지나다가 수원이 저잣거리의 상인들에게 “나는 한국의 의사인 안수원인데 이번에 가고 나면 다시 오지 못할 것이오만 우리 2천만 동포들이 왜놈들의 노예가 된 것이 슬프군요.”라고 하자 안수원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언양을 지나갈 때 적과 함께 마차에 앉았다가 적의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뺏어 적을 찍으려 하다가 뒤돌아보니 늙은 아비와 어린 자식이 적의 뒤에 있기에 칼을 던져버리고 목 놓아 우니 적 또한 차마 수원에게 해를 가하지 못했다. 수원은 묶인 상태로 열두 곳이나 되는 여러 지역의 저자를 끌려다녔다. 안동에 이르러서도 시종일관 항복하지 아니하였다. 그 후 여러 일족들의 후원으로 석방되어 집에 돌아왔지만 병으로 인하여 한 해 남짓 있다가 죽었다. 〈원문〉安守元은 字阡汝요 順興人이라 晦軒先生裕之遠孫也라 哲宗辛酉에 生于安東하다 生有膽略하야 善射有名이런니 至山南義陣之起하야 首先從之하다 得大將之信任하야 爲点軍檢察官하다 至立巖敗戰하야 憤不自制하고 與同志數百人으로 設天祭하고 佐東广公하야 盡力轉戰列邑하야 一無挫折이런이 東广公이 又被害하고 遂合同志數百人하야 經營各地할새 戰於淸河寶慶寺하야 不利하고 戊申三月十六日에 又戰於杞溪德洞하야 全軍敗走하고 至被執之境하야 軍記書冊裂之投水하고 奮身力戰하야 衆寡不敵하고 遂被執하야 始繫淸河獄하야 蹴獄脫出이라가 敵이 覺之하고 捕圍亂打하야 三日復蘇生이라 以鐵絲로 全身束縛하야 過興海邑할새 呼謂市人曰我는 韓國義士安守元也라 此去不返이요 哀我二千萬同胞爲敵之奴矣라 하니 見者皆流涕러라 過彦陽할새 與敵으로 同坐於馬車하야 奪敵之佩刀하야 欲斫之라가 顧老父幼子在後하고 投劒痛哭하니 敵亦不忍加害하고 巡市者凡十二郡이라 至安東하야 終始不服하고 有諸族之援後하야 釋歸而因病歲餘에 卒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