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목구멍이 딱 막히거나 뒤에 갈증이 인다.이런 차들은 몸에 하등 좋을 게 없으니 마시면 안 된다.보이차 선생이라면 이 정도 이야기는 들려주는 게 상식이다.그 여자 차 선생은 양보석 선생님께 여러 질문을 했지만, 주구장창 변죽만 울리고 있었다. 소위 내공(內功)이란 것은 몇 가지 질문이면 그 수준이 가늠되고 1시간이면 그 바닥이 온전히 드러난다. 밑천이 드러나는 것이다. 물질이 만연한 사회일수록 드러난 자들은 사짜일 확률이 높다. 대중작가, 대중스타, 대중00. 대중이 붙은 자들을 조심해야 하는 게 대중시대다.질문은 머리가 명석해야 잘하는 것이다. 말을 뱉는다고 의문문으로 던진다고 유창하게 말을 구사한다고 좋은 질문이 될 수 없다. 질문은 그저 하는 게 아니고 뭘 알아야 제대로 할 수 있고 깊게 할 수 있는 것이다.나는 이 졸창간 시작된 시음회에 한 분을 초대했다. 기차 타기 전 차를 한잔 하기로 한 이학무 전 한국일보 지사장이었다. 이 장관을, 아니 이 향연을 이왕이면 보여드리고 싶었다. 해서 다관으로 오시라 했다.여자 차 선생은 이학무 지사장이 오시자, 자리를 서둘러 파했다.양보석 선생님과 이학무 지사장 그리고 나 셋이 남아 20년 된 맛 좋은 청차 2종을 호식하며 이번엔 정치 다담을 나눴다. 낮에 졸지에 천덕꾸러기가 돼 버린 5선의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이 선거 전단을 들고 찾아온 터였다. 주 의원은 양보석 선생님의 고교 2년 선배다. 주 의원은 다음주에 차 한잔 하러 오마 하고 나갔다. 혈색은 좋아 보였다. 뒷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짠한 구석이 있었다.“이번에 무소속 출마?”밤 8시가 가까워오자 식사를 밖에 가 해결하느니 다관에서 해결하자고 했다. 짬뽕을 먹으려다 피자로 선회했다. 다관 부근에 도미노피자가 있었다.짬밥이 제일 낮은 내가 피자를 찾아왔다. 피자를 곁들여 먹는 보이차맛을 아실는지. 기가 막히다. 기름진 음식과 보이차는 궁합이 최적이다. 어느새 시곗바늘은 밤 10시를 향해 부지런히 달리는 중이었다. 나도 이제 대전으로 달려가야 할 것 같았다. 10시 38분 열차를 예매하고 다담을 마무리했다.다관의 다담은 누군가 부러 끊지 않으면 끝이 없다. 다관은 말한 대로 정보 교류의 장이고, 사교의 장이기 때문이다. 241년 전 저기 대서양 너머 프랑스는 프랑스혁명 전야에 살롱에 모인 지식인들로 가득했더랬다. 그들은 루소의 <사회계약설>을 갖고 난상토론을 벌여 자유 평등 박애를 기치로 전 프랑스를 덮고 전 유럽을 뒤덮었더랬다. 우리는 저 이태리에서 넘어온 피자를 먹으며 밤늦도록 나라걱정을 했다. 다관은 그런 이야기가 묵직하게 오가도 거리낌이 없는 곳이다.오후 2시 10분부터 시작된 다담은 밤 10시 10분에야 끝이났다. 꼭 8시간이었다.찻값은 이학무 지사장님이 내주셨다.이학무 지사장님이 동대구역으로 배웅해주는 길, 가만 생각하니 오늘은 ‘전·현직 지사장의 날’이기도 했다.이근욱 선배님은 한국경제 대구경북 광고지사장, 이학무 선배님은 전 한국일보 대구경북 광고지사장, 그리고 우연히 만난 중년의 남성분도 신문사 광고지사 출신이었다.여기다가 오늘(11일) 다관을 다시 찾기로 한 이학무 지사장의 동행자는 정선태 연합뉴스 대구경북 광고지사장이다. 이학무, 정선태, 이근욱 지사장님은 모두 내가 좋아하는 선배님들이다. 그러고 보니 김중겸 매일경제 대구경북 광고지사장도 있다.<보석다관>에서 이학무, 정선태, 이근욱, 김중겸 선배님을 모두 초청해 ‘지사장의 날’을 한번 열어드릴까도 싶다.양보석 선생님의 다관에 이학무, 정선태, 이근욱, 김중겸 선배님이 함께 모이면 대구의 뒷골목 역사와 비사(祕史)까지 미주알고주알 날아다닐 것이다. 나는 팽주로 차만 우려주면 될 일이다.금기를 깨고 두 번째 외출을 감행해야 할까도 싶지만, 자중할까 한다.오늘 [글밥]을 빌려 이재윤(전 영남일보 이사), 김남일(전 포항 부시장) 두 선배님의 퇴직을 제때 챙기지 못한 점,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전하고 싶다. 보이차 애호가 이재윤 선배님께는 <보석다관>에서 차를 한잔 우려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지난 연말 명퇴한 김남일 선배님은 곧장 중국 여행길에 올라 이경숙 수박물관장과의 식사 자리가 이뤄지지 못했다. 나도 어느덧 마흔 중반을 넘어섰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이 있고, 그에 비해 시간은 유한하다는 걸 실감하는 나이에 이르렀다. 유한한 시간은 희끗희끗 돋기 시작한 새치가 경보음처럼 알려주고 있다.선배님들이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심보통 2024.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