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원 의사의 기록은 창의지와 유사가 그 생년이 다르다. 유사에 얹힌 묘갈명이 맞을 터이니 유사의 기록이 맞다. 대부분 옥고를 치른 의사들은 거의 서훈을 받았는데 안 의사는 서훈을 받지 못했으니 의외다. 서훈 신청이 쉬울 터이니 기념사업회가 서둘러 서훈 신청을 하여 영령을 위로할 부분이라 하겠다.安守元 義士 略歷(안수원 의사 약력) ①安守元(안수원)은 字(자)는 德守(덕수)오 初名(초명)은 永洙(영수)라. 貫鄕(관향)은 順興(순흥)이요 高麗神宗朝(고려신종조) 興威衛保勝別將(흥위위보승별장) 追封神護衛上護軍(추봉신호위상호군) 子美(자미)의 後孫(후손)이요 三韓三重大匡(삼한삼중대광) 都僉議中(도첨의중) 贊修文殿太學士(찬수문전태학사) 號晦軒(호회헌) 謚文成(익문성) 裕(유)의 二十二世孫(이십이세손)이라 檀紀四二○七(4207), 西紀一八四七(1847), 高宗甲戌十二月十六日(고종갑술십이월십육일) 慶尙道安東郡月谷面 覺輝里第(경상도 안동군 월곡면 각휘리제)에서 父慶浩(부경호) 母月城崔氏(모월성최씨)의 長男(장남)으로 出生(출생)하다. 성품이 쾌활하고 기운이 남달랐으며 어릴 때부터 유람에 취미를 두고 二十歲(이십세) 전에 八道江山(팔도강산) 구경을 다하고 또 천렵을 좋아하여 나이 三十(삼십)이 될 그 무렵에 경주부 죽장 산중에 머물러서 총쏘기를 배워서 명사수로 칭찬을 받았으며 또 한 가지 특별한 성격은 역사소설을 좋아하여 삼국지, 조웅전, 유충렬전 등을 모두 달통하고 그런 영웅들의 행동을 본받고자하는 성격이 있었다. 이때에 시국은 벌써 큰 혼란 상태로 시작되어 우리나라의 대동맥이 되는 中心地(중심지)에 있는 경부선 철도가 왜놈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나라의 호흡문으로 되는 각 지방의 항구가 모두 왜놈들의 출입하는 발판으로 되고 잇달아 乙巳(을사)조약이란 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어 국외 국내의 모든 권리가 송두리째 왜놈들의 이권에 들어가니 지사 영웅들의 가슴은 더 말할 수 없이 복잡하게 되어서 四方(사방) 동정을 살피더니 이때에 마침 永川(영천)에서 山南義陣(산남의진)이 일어났다. 公(공)은 이 소문을 듣고 남 먼저 달려가서 主將(주장) 鄭鏞基公(정용기 공)을 보고 東大(동대) 普賢(보현) 양산 간에 있는 포수들을 다 불러내기로 지원하고 丁未(정미) 양년 간에 기계, 죽장, 청하, 청송, 그 등지의 포수 수백 명을 입진시키고 公(공)은 대장의 신임을 얻어서 點軍檢察官(점군검찰관)이란 지명을 받고 山南義陣(산남의진)이 여러 곳으로 나가 싸울 때에 그 시기와 지대에 따라서 파견시킬 인원수는 항상 검찰관이 결정하였다더라. 丁未九月一日(정미 9월1일) 입암패전에 우리는 만리장성이 무너지고 대진형세가 7령8락으로 될 그때에 公(공)은 동지 수백인과 더불어 山雄水壯(산웅수장)한 그곳에서 天祭(천제)를 진설하고 하느님 앞에 맹세를 올리되 “최후의 한 사람이 남을 그때까지라도 우리는 죽음으로서 싸우겠습니다.”고 하였다. 이렇게 하는 태도로써 전 군중에 필사적 결심을 보이고 선대장의 부친인 東广先生(동엄선생)을 모시어 大將(대장)으로 추대하고 公(공)은 이때에도 점군감찰관으로 책임을 지고 진두에 활약하여 경상도 여러 고을들을 진격할 새 가는 곳마다 큰 전과를 올리고 영덕읍에 도착하여 군수물자가 모두 핍절되었기로 이것을 준비하다가 그 사이에 또 대장이 피금되어 永川(영천)에서 순절하고 우리는 부하 잔군이 모두 마음을 합하고 힘을 단취하여 장기읍을 함락시키고 그 다음 여러 곳에서 왜적들과 접전을 계속하였다. 이렇게 하다가 흥해사람 崔世允公(최세윤 공)을 맞이하여 大將(대장)으로 추대하고 작전계획을 다시 책정하여 본부는 南東大山(남동대산)에 웅거하여 각 분대들을 지휘하도록 하고 각 분대에 백전노장들이 모두 웅산태령에 한 지역씩 분담하여 유격전으로 적을 대항하기로 약속이 되었다. 공은 이때 飛鶴山(비학산)지역을 분담하여 청하, 신광, 기계, 죽장 등지를 담당하고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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