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2000년도 훨씬 전에 엄청난 명언을 남겼다. ‘너 자신을 알라.’ 이를 순우리말로 하면 ‘네 꼴을 알라’는 것이다. 꼴은 생김, 모양이다. 상투어로는 ‘네 꼬라지를 알라’이다. 이 말의 함의는 네가 얼마나 무지한지를 잘 알고 끊임없이 궁고(窮考)하며 겸손하게 살라는 뜻이다.엊그제 [글밥] <세 Y 이야기>를 계기로 조직꼴을 되새겨봤다. 회사꼴, 사회꼴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여러 질(質)의 인간이 모여 인간세계의 꼴을 이룬 게 조직꼴이다.조직에는 나를 기준으로 선배가 있고 후배가 있고 동기가 있다.내가 경험한 조직은 신문사였다. 두 곳의 신문사에서 12년간 재직했다. 되돌아보니 선배의 유형에는 세 부류가 있다. 정의로운 자, 정의롭지 못한 자, 정의에 무관심한 자다. 정의로운 자는 사안에 비교적 바른 소리를 뱉는 자였다. 정의롭지 못한 자는 사안을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이현령비현령하는 자였다. 정의에 무관심한 자는 존재감이 없는 자였다.장기적으로 보면 조직에서 가장 쓸모없는 자는 정의에 무관심한 자일 것이다. 조직을 좀먹는 자이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조직에 위해가 되는 자는 정의롭지 못한 자일 것이다. 이런 자들은 후배 등을 처먹을 생각도 서슴지 않는 자이기 때문이다. 한편 회사 오너 입장에서 가장 골칫거리는 정의로운 자이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인 조직에서 오너 입장에 사사건건 이견을 내거나 반대의견으로 일관하는 자는 여간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그래서일 것이다. 공자는 일찍이 이런 귀감이 될 만한 말을 남겼다. ‘不在其位, 不謀其政.’ 그 직위에 있지 않거든 그 자리의 경서를 논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것이 18세기 조선후기 동학농민운동기에 이르면 ‘사또 하는 일에는 그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말라’는 ‘거향관(居鄕觀)’으로 자리잡아 거의 모든 식자들이 학정, 폭정에도 눈 감고 귀 닫아 군주민수(君舟民水·성난 민심이 배를 뒤집다)의 지경에 맞닥뜨렸다.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게 조선이다.내가 경험한 조직의 후배들은 딱 두 부류였다. 지력(智力)이 가당찮아 사안의 정통을 꿰뚫지 못한 자와 마음꼴이 삿되먹어 바르지 못한 선배라도 술 사주고 밥 사주면 무조건 좋다고 따르는 자. 지력이 모자라 사안을 바로 보지 못한 자는 흐리멍덩한 자이다. 마음이 삿돼 틀린 걸 알면서도 옳다고 우기는 자 혹은 그쪽에 붙은 자는 영악하기 이를 데 없는 자이다. 둘 다 종내 조직을 좀먹는 자이다. 조직꼴은 이런 선후배의 꼴들이 뭉쳐진 형상이다.나는 서양인이 쓴 사상사 책보다 일본인이 쓴 사상사 책 보기를 즐긴다. 상대적으로 더 잘 알려진 일본 소설 쪽으로는 왠지 마음이 동하지 않아 10여 권 재어 놓고만 있다.일본인이 쓴 <미움받을 용기>는 그 유명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상대해 알프레드 아들러를 줏대 삼아 어찌 살아야 행복한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전2 권인데 나는 1권만 읽었다. 읽은지는 좀 됐지만 두 가지 이야기가 여적 기억에 맴돈다.이 책의 저자 중 한 사람인 고가 후미타케는 초등학교 때 친구가 없었다. 후미타케의 엄마는 그게 늘 걱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선생이 상담을 요청했고, 이 자리에서 후미타케의 엄마는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선생님, 우리 후미타케는 친구가 한 명도 없어요. 선생님이 좀 도와주세요.” 이 말을 들은 담임은 “어머니 친구가 없으면 어때요?” “네? 어떻다니요?” “후미타케는 친구가 없어도 별문제 없이 잘 생활하고 있고 자기 할 일을 스스로 잘 해낸답니다. 꼭 친구가 필요한 것은 아니랍니다. 그러니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미움받을 용기>는 대화체로 구성돼 있다. 철학자와 청년 간 대화인데, 마치 플라톤의 <대화편>을 연상케 한다. 책 후기에 보면 후미타케는 아들러를 10년 공부한 뒤 공동저자이자 스승인 기시미 이치로에게 “제가 선생님의 플라톤이 되겠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책의 형식을 빌려 왔다고 써놓았다.이 책에서 두 번째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이치로가 후미타케를 제자로 들이는 장면이다. 이치로는 아들러의 선구자로 사숙(私塾)을 운영하던 가정교사였다. 후미타케가 사숙료를 묻자 이치로는 그런 건 필요 없다고 했다. 후미타케가 놀라며 왜 돈이 필요 없냐고 되묻자, 이치로는 기가 막힌 답을 내준다. (계속)